110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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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향의 마음도 때로는 폭력적이다.
발화자 안에서만 간직되는 마음이란 불가능하니까.
마음은 언제나 밖으로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내 의도와 별개의 시간과 장소에서, 느닷없이.
특히, 상대의 생각이나 마음과 무관하게.
좋은 말이 언제나 좋기만 하진 않은 이유.
말을 할 때, 언제나 숨을 고르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편지는
숱한 수단 중에서도
무해함에 가장 가까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신자, 발신자 모두에게.
편지는 언제나 어딘가에 담기므로,
알기를 원하지 않으면 펼치지 않으면 되니까.
오늘 새벽에는 그런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수신인은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이었다.
사인회에서 전할 생각으로 고민 끝에 적었다.
오래 간직해온 마음이 실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팬의 마음으로 전하는 편지는 처음이다.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인디밴드에는
결국 편지를 전하지 못했다.
매번 쓰기만 한 편지는
내 편지함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때도 무턱대고 좋다고 전하는 마음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우상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어쩐지 부끄러워지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정말 받아주실까, 읽어주실까 싶은 마음도.
그럼에도 그때는 건네지 못했고
오늘은 건넬 수 있던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으니까.
아무것도 말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게 되니까.
최대한 말을 고르고 골라서
정말 잘 읽고 있다고, 감사하다고,
작가님의 글이 너무너무 좋다고.
당신의 팬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여기 멀리에
당신의 온점에서 그어진 선이 있다고.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