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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조각
『바보의 세계』라는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왜 이리 바보 같은가-하는
잡다한 발상 때문도 있지만,
실질적인 독서 이유는 번역가다.
지난달에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1월에 『철학의 쓸모』도 재밌게 읽었는데
모두 같은 분이다.
바로, 박효은 번역가님.
문장이 술술 잘 읽힌다.
번역된 책을 읽고 있으면,
‘내 삶에도 번역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구태여 생각하고 다듬지 않아도,
무언가를 파헤치지도, 애써 지켜내지 않아도.
담백하게, 더도 덜고 아니게
다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쁜 일, 걱정과 고민,
관계 속 갈등을 풀어낼 때는 특히 더.
덮어두고 무시하고 외면하거나
아예 관계를 끊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살아간다는 건 오히려
버리고 싶은 관계일수록 그럴 수 없다.
하다못해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 관계일지라도.
가슴이 꽉 막힌 기분과
오류투성이의 답안지를 들고서
그래도 살아갈 만하다는 희망과 믿음을 버무려본다.
내 삶을 다듬어
보기 좋게 고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니까.
울화통이 터지고
같을 말을 하느라 목이 쉬고
귀는 피딱지가 앉는 것 같아도.
새로 생겨나는 흔적 위에
흑화하는 의지라도 섞어 본다.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