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주로 책으로 독자를 만나는 장르지만, 저는 전시도 종종 참여합니다. 그림책 원화전은 물론이고, 개인작업들을 모아 전시를 한 적도 여러 차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시회’ 를 한다는건 전시를 위해 그럴듯한 그림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지요. 어느 날, 잘 아는 아트 딜러와 이야기를 하다가 드로잉 이야기를 하다가 ‘전시를 하자’ 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작고 소소한 그림으로? ‘ 라며 놀라기도 잠시, ’재밌겠다!!‘ 는 생각이 뒤를 이었습니다. 애초에 혼자 연습삼아 그리던 그림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려고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으니까요. 직접 보여줄 기회가 있으면 다들 좋아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시작으로 ’인스타그램 드로잉 프로젝트‘ 는 제 단골 전시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2017년 봄, 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 드로잉북을 뜯었습니다. 한 권을 꽉 채우는게 목표였는데 그걸 뜯어서 전시하려니 조금 아까운 마음도 들었어요. 정말 큰 마음 먹고 전시를 준비했지요. 그래도 두번째 전시인 2019년에는 좀 더 과감하게 드로잉북 몇 권을 골라 해체했습니다. 꽉 채운 드로잉북이 10권넘게 쌓여있으니 몇 권쯤 뜯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어든요.
작은 드로잉북 하나를 뜯어 늘어놓아도 꽤 큰 벽면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놀라웠어요. 전시를 준비한 저도, 전시를 보러 온 친구들도 sns에서 매일 보았던 그림을 늘어놓고 보는 재미를 발견한 계기였습니다. ‘이미 사진으로 다 본 그림인데 굳이 보러 올까’ 걱정했던 제가 생각이 짧았던 거였죠. 그림의 주인공들이 몰려와주었으니까요.
저는 사람들이 그림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보는걸 좋아해요. 그런데, 이 드로잉 프로젝트로 전시를 할 때는 조금 더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려서 전시를 연 제가 주인공이 아니라, 그림 속에 등장하고 전시를 보러온 많은 친구들이 모두 주인공이었기 때문입니다. 갖난아기 적부터 즐겨 그리던 아이가 수줍게 걸어와서 그림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과 탄성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함께 만드는’ 그림일기가, ‘함께 만드는’ 전시회로 눈앞에 펼쳐지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