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신문지 게임

by 해처럼


시간이 몸 안에 쌓이면 쌓일수록 지켜야 할 것들도 많아진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싸워야 할 것도 많아진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 나는 꿈을 상실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점점 그것을 쫓아가기에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힘에 부치는 게 아니라 한계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나이라는 한계로 인해 앞으로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서서히 줄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심히 불안해진다. 학교에 다닐 때 MT에 가면 신문지를 2분의 1씩 접어가며 어느 팀이 오래 버티는지 겨루는 게임을 종종 하곤 했는데, 지금은 매일 그 신문지 게임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시간이 몸에 쌓이고 나이라는 증빙서류가 매년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내가 서 있는 땅이 조금씩 줄어든다. 남극의 빙하가 녹고 있는 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딛고 있는 신문지는 착착 반으로 접히고 겨우 발끝으로만 서 있는 기분이다.



©2021 해처럼



독일의 작가 악셀 하케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있다. 그 작은 임금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아기일 때 가장 크고,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점점 줄어들어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마침표 보다도 더 작아져 결국 소멸되어 버린다. 제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이 들며 작아지는 '몸'의 자리에 그 대신 '가능성'이라든가 '꿈' 같은 단어를 대입시켜 보면 조금 슬퍼진다. 모든 사람들은 어릴 때 가능성이(혹은 꿈이) 가장 크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 가능성이(꿈이) 점점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소멸되어 버린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저 임금님의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은 임금님을 '시간'이라고 생각해보면 약간 발끝이 저려올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24시간 크기의 임금님이 태어난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비대하다 느끼겠지만 아주 조금씩 그 크기가 작아져 어느새 돌아보면 작아져있는 그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다. 언제 이렇게 작아진 거야, 중얼거리면서.



©2021 해처럼




사는 게 너무 벅차고 힘들어 간절히 내일을 원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내일을 바라고 있었다. 내일의 나와 주변의 상황이 오늘보다는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것으로 그 오늘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이없는 태도였음을 이제는 안다. 내일은 분명 올 것이지만 우리는 영원히 내일을 만질 수 없으니까.



앞으로 남은 것은 늙어갈 일 혹은 줄어들 일 밖에 없는 건가 절망스럽다가도, 닫힌 것은 몸의 성장판일 뿐 정신의 성장판은 활짝 열려있음에 틀림없다며 다시 새로운 마음을 먹는다. 더 높이 자라날 수 없다면 더 깊이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외연의 확장이 여의치 않으면 내면을 확장해가는 거다. 화성을 개발하기 앞서 오염된 지구를 정화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하듯.



발 밑의 신문지는 이제 그만 신경 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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