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우리가 늙어가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야

by 해처럼


사람은 자신이 가장 빛났을 때를 독보적인 기준으로 삼은 채 살아가는 듯하다. 보통 체격의 여성 혹은 남성이 '요즘 너무 살이 쪘어'라고 말할 때 그는 몇 달 전 자신의 모습이 아닌 가장 빛나던 자신의 리즈시절을 기준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의 몸무게로 가까스로 회귀한다고 해도 채워지지 않을 무력감은 찌꺼기처럼 남아있게 된다. 그것은 자신을 통과한 시간에 대한 무력감 내지는 당혹감이다.



우리는 생명 그 자체로 태어나 쉬지 않고 그 생명을 흘려보내며 생의 바다로 나아간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시간이라는 구멍 속으로 자신이 보유한 생명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모래시계의 미세한 구멍으로 소리도 없이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누구도 예외는 없다. 'LIFE'에 생명, 삶, 생명체라는 뜻이 동시에 들어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삶이 곧 생명이라는 진실을 '라이프'라는 단어가 보여주고 있다.











©2021 해처럼



매일 거울 속에 비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시간의 맨얼굴을 마주한다. 시간은 대개 '흐르는 것'으로 묘사되고는 있지만 어쩌면 흐르는 것은 생명이라는 모래알들이고 시간은 그저 쌓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다가 돌아오면 그 시간만큼의 먼지가 집안 구석구석 내려앉아 있는 것처럼 시간도 우리의 몸과 마음에 먼지처럼 쌓여간다. 아무리 깊은 동굴 속에 꽁꽁 숨어 있어도 시간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내어 그 분량만큼의 노화를 당당히 요구하고 정확히 챙겨간다. 노화란 살아있는 자가 치러야 할 '납세'의 의무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가 늙어가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다.



중력의 영향으로 시간은 지구의 중심부에서 멀어질수록, 질량이 많이 나갈수록 천천히 흐른다고 한다. 그 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오해하여 산 위로, 더 높은 지대로 집을 옮겼고 그 높이가 높으면 높을수록 지위와 부의 높음과 많음을 반영했다고 한다. 고층 아파트의 꼭대기층이 더 비싸게 팔리는 이유가 단지 전망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물론 그 이론이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훨씬 전에도 부와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선호했다. 게다가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장수했다.



상황에 따라 중력이 작용하는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어서일까? 신체의 무게와 정신의 무게, 경험의 무게, 행복과 불행의 무게가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 같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은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동일한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이는 일률적으로 하나의 숫자씩 부여받는 것이 아닌 각자의 경험이 퇴적되는 양일 지도 모른다. 일찍 철이 든 어린이와 끝까지 철들지 않는 노인도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한 것들을 하나의 자로 잴 수는 없는 것이다.



돌아보면 시간은 늘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게 가곤 했다. 그러니 각자의 시간들을 조절하여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여기에 '같이 있다'는 사실은 보통의 사건이 아니다. 각기 다른 시간의 변주곡이 딱 일치되는 순간이라는 건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다.



시간은 흐른다기보다는 '고인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 안에 시간은 서서히 고인다. 더 이상 시간이 고일 여백이 없을 때까지 우리는 이곳에 존재할 것이다. 오늘 얼마간의 시간이 또 내 안에 고였다.




©2021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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