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프라이를 할 때는 항상 아주 미미한 불로 한다. 약한 불에 익혀야 더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강불에서 프라이를 하면 계란 표면이 단단해져 부드러운 맛이 덜하다. 좀 오래 조리했다 싶으면 계란 표면은 거의 딱딱해져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고무를 씹는 듯한 질긴 느낌이 난다. 약한 불로 살살 달래 가며 계란 프라이를 하면 끝까지 야들야들한 감촉을 유지하며 표면에는 영롱한 윤기마저 감돈다.
강한 불 위에 던져진 계란으로써는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단단해질 수 밖에는. 그렇지 않고서는 뜨거움을 견뎌낼 수가 없었을 테니까. 뜨거운 불에 덴 듯 상처를 많이 받은 존재는 마음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인다 해도 내면에서는 자주 폭풍이 일어난다. 문득문득 내 안의 꼬인 감정을 맞닥뜨릴 때면 강불에 구워진 단단한 계란 프라이를 떠올린다. 결국 야들야들한 프라이가 되지는 못한 것 같네, 투덜거리게 된다. 나라는 계란은 껍질에서 꺼내어져 프라이팬 위로 이미 던져졌고 불이 강하네 약하네 투덜거릴 여유는 없었다. 그러니 단단해진 계란 프라이는 단단해진 채로 주어진 생을 살아갈 밖에.
계란 프라이뿐만이 아니다. 뜨거운 불 위에 올려진 많은 것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상처 입는다. 그 상처들이 아물면서 표피와 내피는 단단하게 응집되고 결국 강하고 단단한 존재가 되어간다. 뜨겁지 않고서 위대함이라는 것이 탄생할 수 있을까? 뜨거운 불을 통과하지 않으면 도자기는 도자기가 될 수 없다. 물컹한 동그랑땡은 익지 않았다는 뜻이고 익지 않은 동그랑땡은 먹을 수 없다.
돌아보면 성장과 변화는 늘 뜨거운 불 위에서였다. 그것이 나를 스칠 때 무척이나 괴로웠고 도저히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을 통과한 후에 훌쩍 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뜨거운 불 위에서 견뎌내고 있는 존재들이여 강하고 단단해지기를. 지금이 바로 우리가 익어가는 그 타이밍이다. 오늘도 프라이팬 앞에서 겸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