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젠가 내 나라가 아닌 어딘가 아득히 먼 외국에서 살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 TV에서 방영하는 외화 시리즈물에 푹 빠져 있었다. 예를 들면 뭐든지 척척 해결하는 정의로운 천재 <맥가이버>라든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미군들의 영웅담을 잔뜩 욱여넣은 <머나먼 정글> 시리즈, 그리고 대체 뭘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매회 벌어지는 통쾌한 전투에 흠뻑 빠져있던 <A특공대> 같은, 파란 눈의 외국 남자들이 무더기로 나오던 외화 시리즈들 말이다. 아마도 그 영향이었을 것이다. 난 멀고 먼 외국으로 날아가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될 운명일 거야, 하는 막연한 꿈에 부풀어있었다. 외국이라 함은 적어도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곳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현재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어느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외국은 외국이니 예지력만큼은 인정해야 되는 건가?
가깝지만 먼 나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을 수 없는 숙명을 가진 나라. 때로 문득 단전에서 우러나는 분노의 주범이 되기도 하는 나라. 내가 이곳 일본에 갖고 있는 이미지란 그런 정도였다. 딱히 관심선상에 오를 일도 없지만 그 어떤 스포츠건 한일전이 열리면 결과가 미치도록 궁금해진다. 그뿐이었다. 스무 살 무렵에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여전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느닷없이 다가온 하루키의 문장들에 반해 작가가 쓴 소설이며 에세이를 전부 읽고 나니 내 안에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일본의 얼굴이 생겨났다. 일본은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라가 되었다. 하루키가 창조해 낸 주인공들의 쿨함과 무심함, 말로 적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뭉뚱그려진 생각들을 따박따박 언어로 묘사해 주는 하루키의 문장들에 꽂혔고, 그 세계관이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 긴 시간 동안 제국주의 일본과 하루키의 일본이 내 안에 공존했다. 30대에 결혼을 하고 ‘어쩌다 보니’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일본에서 살게 되는 시점까지는 말이다.
남편의 아내가 되어 둘이 함께 착륙한 일본땅에서 여행자가 아닌 거주민으로 살아온 지가 20년에 약간 모자란 시간에 이른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는 시간이자, 오헨리의 [20년 후]라는 단편소설에서는 두 절친이 헤어진 뒤 경찰과 범죄자의 신분으로 만나게 되는 시간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와 셀린이 처음 만나 풋풋한 사랑을 시작해 만나고 헤어짐을 거듭하다, 현실 위에 다시 깊이 있는 사랑과 삶을 쌓아가기까지 걸린 시간도 20년이었다. 그 중후함을 지닌, 생의 가운데 도막 같은 시간들의 공간적 배경이 내게는 일본이었다. 신혼을 시작했고, 아이를 낳고 키웠다.
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야 비로소 아주 근접한 거리에서 일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집이 가까웠던 한 엄마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 옛날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괴롭힌 것 정말 미안합니다.
그녀는 허리를 깊이 숙이며 내게 인사했고, 나는 무척 당황했다.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상황을 어떻게 넘겼는지 잊어버린 건가 보다. 나는 ‘아 뭐 괜찮아요~’라고 할 수도 없었고, ‘맞아요 맞아요. 당신들 정말 너무 했어요!‘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지금 다시 한번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역시 똑같은 반응 밖에는 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도 마음이고 고맙게 생각되긴 하지만 그렇게 개인과 개인이 엉거주춤 마무리할 일은 아니니까.
나이 지긋한 또 다른 일본인은 이런 말을 했다.
- 너희 한국인들이 일본에 와서 돈을 벌고 있으니 일본에게 고마워해야 해.
그 사람과는 그 후로 손절했다. 지구상의 어디에나 극우들이 있고 상식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그런 이들과는 일찌감치 멀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그 외에 특별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는 시선은 다행히도 만나보지 못했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착륙해 긴 기간 거주하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간단히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 받아온 역사교육으로 탄탄하게 형성된 한국인으로의 기본적 역사의식과, 그와 별개로 직접 체험하여 피부 깊숙이 들어와 있는 현재의 일본에 대한 감정. 그것은 왼쪽 스피커와 오른쪽 스피커에서 각각 울리는 두 개의 BGM처럼 내 생활 속에 묘하게 섞인 채 흐르고 있다.
깔끔한 거리와 매너 좋은 사람들, 가게에서 서빙하는 사람과 게스트가 서로를 존중해 주는 모습, 직업의 지위고하를 막론한 성실함, 길거리의 예쁜 꽃들과 정성스러운 정원의 아름다움. 그러한 것들을 접할 때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동하게 되는 포인트가 있다. 특정한 사람들의 극우적 애국심에 흠칫하면서도, 인연을 맺고 사이좋게 지낸 지인들의 따스함과 자상함 같은 것들은 국적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배움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때맞춰 나지막이 두 개의 BGM이 흐르고, 그것은 ‘그래. 나는 이방인이지’의 감각을 일깨운다. 그것은 이방인이라는 단어의 표면에 적힌 배제감 혹은 외로움이 아닌 차분히 주변을 관찰하는 객관화된 감각에 더 가깝다. 그건 그것대로 자유로움을 준다. 카메라의 렌즈를 자유롭게 줌인, 줌아웃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장소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이는 일본에 대해서도, 동시에 한국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진영을 떠나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이치려니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이 시절과 이 장소가 그리워질 것이다. 특정한 나라로서가 아니라 나의 30대와 40대를 온전히 보낸 곳으로써의 그리움일 것이리라. 사실은 누구나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거주민이자 동시에 여행자로 살아가는 것 아닐까. 모두가 지구라는 행성에 잠시 머물다가는 존재들이기에. 나 역시 우연히 이 순간 지구의 한 지점 ‘일본’이라는 풍경 안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 행성에서 마주친 이들과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다정하게 지낼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방황하는 자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 J.R.R. 톨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