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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May 16. 2021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읽기의 자율주행

가키야 미우의 소설을 읽었다. 일전에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드립니다>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바 있다. 그는 2005년에 추리소설로 데뷔한 뒤 많은 소설들을 썼다. 이번에 읽은 것은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다.




가키야 미우는 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한 성향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 그의 소설에서는 초고령 국가 일본의 노인들, 독립성도 능력도 갖추지 못한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들(자녀들), 뿌리 깊은 가부장제로 마음이 병들거나 삶에 수동적인 여성들이 단골 주인공이다. <82년생 김지영>도 일종의 리포트 형식으로 쓰인 소설이면서 사회적 메시지가 강하듯 가키야 미우의 소설들도 이것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미묘할 만큼 지극히 평범한 문체로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이러한 소설의 방점은 감동적인 문장이라든가 빛나는 단어 같은 것을 발견하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메시지에 있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사실 대도시와 지방의 사정은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된다)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20여 년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주인공이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시 말해 시부모의 죽음이 아닌 남편의 죽음으로 촉발되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해서 범인을 추리해가는 스토리는 아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사후 이혼' 그리고 아내와 며느리의 굴레에 매여있던 한 40대 여성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독립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경우 남편이 사망한다고 해도 며느리의 역할은 계속되나 보다. 여러 가지 의무들이 법률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후 이혼'과 관련된 서류(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를 구청에 제출해야만 한다. 일본의 여성은 결혼하게 되면 남편의 성으로 이름이 바뀐다. 필자의 한 일본 친구는 결혼해서 성이 바뀌기 때문에 옛 친구와 연락이 끊겨 다시 찾으려고 해도 바뀐 이름을 몰라 쉽지 않다는 이야길 했었다. 최근에 한국에서 어머니의 성씨와 아버지의 성씨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법률이 마련되었다고 하던데, 일본은 결혼하면 성을 '갈아야' 할 정도라는 것이지. '사후 이혼'을 하게 되면 본래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고 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법적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단다. (예를 들어 남은 시부모를 부양하고, 납골당을 관리하는 등등... 의 의무들)


​​



전 세계적으로 '미투' 이슈가 퍼져나갈 때조차 일본의 여성들은 조용했다. 짐작일 뿐이지만 일본의 여성들은 조용히 앓고, 조용히 분노하다가 조용히 덮는 것 아닐까 한다. 가키야 미우는 소설의 형식을 빌어 역시 조용히 일본의 여성들에게 깨어나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렇게 다 견디고, 다 참고 살지 말라고, 니 인생은 니거야. 그 목소리가 하도 작아 심지어 바들바들 떨며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제목은 보무도 당당하게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여성이 갖게 되는 타이틀 중에서 '며느리' 만큼 부담되는 것이 또 있을까. 남성들에게 '사위'가 차지하는 무게와 같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나는 남자가 아닌지라) '딸 같은 며느리'가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명제다. 자랑스러운 며느리, 멋진 며느리는 있을지언정 딸 같은 며느리는 어폐다. 며느리 같은 딸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은 수많은 기혼여성들에게 자극적이다.


이것은 페미니즘 소설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앞에 수식어가 필요하다. '소극적 페미니즘 소설'. 대도시와 지방의 분위기는 다르다 할지라도 이것은 아마 속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와야만 한다는 오랜 진리를 가키야 미우는 말하고 싶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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