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도저히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이런 정도의 나를 데리고 생을 살아가야 하는 일이 버거워지고 스스로가 한없이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차가운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고 정신을 가다듬으면 문득 알게 된다. 그 시선이 내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눈이 아닌 타인의 시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함부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왜 때때로 구덩이에 빠지듯이 그 바람직하지 못한 시선을 무의식 중에 허용하고 마는 걸까. 그 시선을 혐오하면서도 왜 어느새 똑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누군가로부터 어떤 종류의 하찮음이 묻어난 시선을 지속적으로 혹은 한 순간이라도 받게 되면 그것은 당사자에게 오래 머문다. 그 '오래'라고 하는,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어는 어쩌면 평생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지간히 강한 멘탈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그 시선에 넉다운되어 무심코 자기도 모르게 그와 같은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본다. 존중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칼날 같은 시선을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자기를 상처 입히게 된다.
사회 초년생 시절,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어 한동안 실직 상태였던 적이 있었다. 실직과 취업 사이의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었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몸에도 이런저런 심각한 신호가 와서 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스트레스성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자신이 다니는 정신과 상담을 추천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니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따라나섰던 것을 보면 그래도 몇 퍼센트 정도는 전문가의 위로를 기대했던 건가 보다. 중년의 남자 의사는 내 이야기를 잠시 듣더니 한 마디를 성의 없이 내뱉었다.
"그럼 취업을 하시면 되겠네요."
응? 아저씨, 내가 그걸 모르는 것 같아?라는 말은 물론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할 정도의 당당함이 있었으면 그곳을 찾지도 않았겠지. 중요한 건 그의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 시선, 바로 그 시선이었다. 의사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목소리가 고음이었는지 저음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선만은 한동안 뇌리에 머물러있었다. 나 같으면 여기 와서 앉아 있을 시간에 취업 준비를 하겠어, 가서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지 그래, 한심하네. 그 시선은 정확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썩은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왔고 이후 모든 종류의 정신과 상담이라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라고 믿게 되었다.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돈을 내고 하찮은 취급을 받아버린 기막힌 경험이었다. 뭘 기대한 거야 대체? 떠오를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그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라면 생의 정답은 고매한 전문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결국 자기의 생은 자기 스스로 찾아낸 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의욕적으로 어떠한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불현듯 나를 주춤거리게 만드는 순간이 온다면 바로 그때가 시선의 기억이 파고드는 순간이다. 시선은 그저 말 그대로 침묵의 시선이기도 하고 어떤 종류의 언어이기도 하다. '너 같은 게 무슨?' '아무나 하는 일이 아냐', '그거 갖고 되겠어?' 이런 종류의 속삭임들이 처음에는 스치는 바람처럼 다가와 얼쩡거리다가 내 안에서 점점 거대한 폭풍이 되고 결국 나를 쓰러뜨리고 만다. 그것은 마치 어둠이 조금씩 주변을 삼켜가는 것처럼 자아에 상처를 입힌다. 해가 지고 어둠이 서서히 주변에 내려앉으면 어느 순간 그 어둠에 물들어 나 자신조차 분간할 수 없게 되듯이. 그것이 시선의 무서운 점이다. 쉽게 물들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이.
그러니 어떤 존재에게 - 특히 그것이 아주 연약한 것일 때- 하찮음을 담은 시선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던져서는 안 된다. 어린 아이나 애완동물을 키울 때, 또는 자기보다 힘없는 이들을 바라볼 때라면 더욱 존중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보다 더 확장하면 도움을 주는 자가 도움받는 자를 바라볼 때, 상사가 후배를 바라볼 때, 고용자가 피고용자를 바라볼 때 등 끝없이 많은 상하관계에서 존중의 시선은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을, 그들이 우리를 존중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불길한 전염병처럼 시선은 서로 끌어당기고 닮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눅 들게 했던 시선의 경험이 침범할 때 서둘러 그것을 떨쳐내고 그 반대편에서 다른 시선을 찾아내려 애쓰게 된다. 가장 따뜻했던 시선, 가장 존중받았던 시선을. 그리고 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 다시 따스한 호흡을 시작할 수 있고 다시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를 바라봐주던 가장 따뜻했던 그 시선이다. 누구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거울 앞에 서도록 하자. 거울 앞의 나 자신을 가장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자. 그리고 그 시선을 오래도록, 아니 평생도록 기억에 저장해 두는 것으로 하자.
시선의 경험이 자신을 정의 내린다. 한 순간 스쳐 지나는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것이 깊이깊이 학습된다. 하찮은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