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무엇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 그것을 하고 싶어지곤 한다. 매일 열심히 뛰는 사람을 보면 왠지 뛰고 싶고, 꾸준히 걷는 모습을 보면 따라 걷게 된다.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감자 깎는 일조차도 재미있어 보여 나도 뭔가를 만들어보게 된다. 특히 요리의 경우 때때로 하고 싶은 마음이 0.1 퍼센트만큼도 싹트지 않아서 곤란해하다가도 다른 이의 요리하는 모습을 꾸역꾸역 찾아서 보고 있으면 의욕 제로의 마음밭에 스멀스멀 요리의 새싹이 올라온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손에 채소들을 쥐고 가스불을 켜고 있다.
책을 읽는 순간에도 이를 피해 갈 수 없다. 좋은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책이나 글을 읽을 때면 도저히 더 읽어나갈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스스로 무언가 쓰고 싶어져 손가락이 근질근질하게 된다. 읽은 문장들이 끝없이 말을 걸어와 답을 풀어놓아야 할 것 같은 감정이 차오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쓴 글들을 읽어보면 어쩐지 감동했던 글과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부끄러워 삭제 버튼을 누르게 되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공부하는 동영상을 켜 둔 채 공부를 하는 것 또한 누군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공부자극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은 대개 긍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문제가 없다. '위험한 것'은 누군가의 쇼핑 영상을 보고 쓸데없는 소비를 하게 되거나, 거친 말을 내뱉는 동영상을 자주 보는 어린것들이 무작정 그 말투를 따라 한다거나, 정신적이고 사상적인 영향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이겠지.
과학자들은 이러한 반응을 간파하여 전문용어로 명명해두었다. 이른바 '거울 뉴런 효과'. 즉 인간에게는 (원숭이나 조류 같은 동물들도 포함해) 거울 뉴런 세포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의 세포에서는 실제로 그 행위를 할 때와 동일한 반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신생아가 말이나 행동을 학습해가는 것도 거울 뉴런의 작용이고, 오래도록 같이 산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도 이 작용이라고 한다. 근처의 누군가가 하품을 하면 따라 하품이 나오고 드라마에서 배우가 우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나오는 공감 능력도 거울 뉴런의 반응이라고 한다. 즉 거울 뉴런은 한 마디로 '모방' 뉴런이다.
청소하는 동영상을 보며 실제 그 행위를 몸이 실천하기 이전에 이미 뇌는 청소를 하는 행위를, 그 후련함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 된다. 바람직한 행위가 모방되는 경우 거울 뉴런의 반응에 열렬히 환영해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 기부를 했다는 소식에 자신의 지갑도 열게 되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기록이나 동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덜 먹고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는 등 아름다운 연쇄 반응은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울해하는 친구를 한참 달래다 돌아서면 자신도 우울감이 폭풍처럼 밀려와 어찌할 바 몰랐던 경험도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것은 거울 뉴런의 부작용이다. 미디어에 의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에 자주 노출되는 어린이나 청소년의 그것은 어쩌란 말인가. 폭력적인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의 뇌에 작용하고 있는 그 폭력적 쾌감의 거울 뉴런들은 이후 어떻게 처리된단 말인가.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것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행동은 무엇인가의 모방이고, 그것의 모방이 지금의 당신이고 나일지도 모른다. 과연 지금 이 생각은 나의 생각일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행위를 바라보고 난 리액션은 아닐까? 보는 것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행동도 지배한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우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해간다. 어느 방향으로 인도해갈지는 그 끝에 가보지 않고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거울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구였던 것이다. 백설공주를 해치워야만 했던 새 왕비의 거울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