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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리 Jun 22. 2017

무(無)와 비움(空)

<빼기의 법칙> '4차 산업시대의 생존코드'

0 은 원래 인도의 범어(梵語, Sanskrit)인 ‘슈냐sunya’라는 말의 개념에서 파생되었다.

슈냐sunya는 ‘비어 있음’을 뜻하는 한자어 ‘공空’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없다’의 의미인 ‘무無’로도 해석되는데, 이 둘의 의미는 비슷한 것 같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비어 있다는 우리말에는 ‘있다’는 말이 포함된다. 빈 것은 있음의 다른 형태인 것이다. 비어(空) 있음(有)이라는 말에는 있음(有)이 포함되어 있다. 비어 있다는 것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완전히 별개로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련이 있음이다.


노자는『도덕경』 11장을 통해서 ‘공空’의 의미를 설파하였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착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최태웅 역『노자의 도덕경』(새벽이슬)의 해석을 빌리면 이렇다.


서른 폭 수레 살은 텅 빈 바퀴구멍이 있어야 그 가운데 축을 넣을 수 있다. 그래야 수레가 수레 구실을 할 수 있다. 진흙을 이기어 그릇을 만드는 데는 그 텅 빈 그릇 안에 있어야 그 속에 물건을 담을 수 있다. 그래야 그릇이 그릇 구실을 할 수 있다. 문과 창을 만들어 방을 들이는 데는 텅 빈 방안이 있어야 가구를 넣을 수 있다. 그래야 방이 방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가 유인 까닭은 무가 쓰이게 되기 때문이다.


바퀴의 발명은 인류 문명의 교류를 크게 증진시켰다. 바퀴는 기원전 5,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인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때의 바퀴는 살이 없는 원판 형태였다. 바퀴살이 있는 바퀴는 2,500년이 지난 기원전 2,500년경 할리스Halys 강변을 근거지로 한 히타이트족이 전차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원판형 바퀴가 빈 공간을 가진 바퀴살의 바퀴가 되기까지 무려 2,500년이 걸린 셈이다.


노자는 바로 이 바퀴살이 있는 바퀴의 핵심을 바퀴살이 중앙의 바퀴통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빈 구멍’으로 봤다. 우리가 늘상 밥을 담는 그릇의 핵심은 그릇의 재질이나 형태가 아니라 밥을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이며, 마찬가지로 집의 핵심은 건축 재료나 구조가 아니라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으로 봤다.


황경신의「생각이 나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누군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있다와 없다는 공생한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무無가 먼저인지 유有가 먼저인지는 확실치 않다.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되기도 하고, 유有에서 무無로 소멸되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인도인들은 바빌로니아인들이 쐐기로 표현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라는 ‘빈자리’ 개념에서 ‘수학적’ 개념과 ‘종교적’ 개념을 불어 넣었다. 인도인들은 우주는 단지 창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멸을 하면서 한데 어우러진다는 힌두교의 사상으로 ‘무無’를 우주 창조의 시초로 본다. 무한과 무無의 개념도 인도에서 나왔다. 비어 있음을 뜻하는 슈냐sunya가 이미 있었기에 바빌로니아인들의 쐐기 표식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며 철학적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그 생명이 다하면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고 먼지가 되어 우주를 떠돈다. 원점으로의 회귀는 소멸이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창조 세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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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3000년경 바빌로니아 지역에는 오리엔트 최고의 문명을 이룬 수메르인들이 살고 있었다. 가축 을 쟁기에 연결하여 농사를 지을 줄 알았고, 바퀴가 달린 수레로 이동도 할 줄 알았다. 이러한 각종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된 농기구들은 신전의 서기인 신관이 관리하였는데, 그 수량을 파악하기 위해서 점토판에 오목하게 눌러서 표시를 하였다.

-바빌로니아 점토판의 숫자, 출처 :위키피디아


당시 바빌로니아인은 10진법뿐만 아니라 60진법을 사용했는데, 이미 0을 자릿수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이 오늘날 표현한 ‘0’은 쐐기모양으로 숫자의 개념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가령 3에서 3을 빼면 우리는 0이라는 걸 감각적으로 알지만, 당시에는 ‘0’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없음' 또는 '소진'을 상징하는 ‘쐐기’ 표시로 그 의미를 대신한 것이다. 말하자면 닭 2마리가 재고로 있으면 2를 의미하는 작대기 두 개를 그어 표시를 했다가 시간이 흘러 닭이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될 경우 쐐기 표시를 한 것. 이 행위는 무엇을 뜻할까? 쐐기가 있다는 것은 그 전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무(無)’가 아니라 있다가 없어진 시간의 흐름 뒤 결과를 단순한 기호로써 형상화한 것이다.


공자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는 최고의 경지”로 칭송한 장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는 언뜻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심오한 통찰이 담겨져 있다.


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도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최선이다.”


‘부전승不戰勝’이라고 알려진『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통상 전투를 치러 싸움에 이기는 전과를 얻더라도 아군 병력의 희생과 각종 군수품 등의 손실이 따르게 마련이다. 호랑이는 싸우지 않고도 그 기세로 상대를 누른다. 싸우지 않고도 상대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하게 하여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상수이다.

가끔 성공한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주위의 도움으로 성공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는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발적으로 주변을 움직이도록 한 고도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장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경지이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던가. ‘무無’의 추구는 현대 및 미래사회의 큰 흐름이기도 하다. 우리가 정보를 검색하여 얻는 많은 자료들은 **한계비용(총 비용 증가분을 생산량 증가분으로 나눈 것으로 고정비용을 제외한 산출량)이 Zero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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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비용 제로 사회, 제러미 리프킨 저 , 안진환 옮김, 민음사


이렇게 검색을 하여 얻는 정보를 무료로 얻을 수 있는 데에는 광고주가 검색 서비스 회사에 대신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저들은 정보의 바다를 마음껏 공짜로 누릴 수 있다.


소유하지 않고도(무소유) 소유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 공유경제로 진화하는 현상 또한 ‘무’의 무한한 가치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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