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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Feb 10. 2017

오사카의 밥벌이를 찍다

츠타야 서점부터 오타쿠 서점까지


친절함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걸었다. 걷다보니 맛있는 식당이 나왔고 그 식당에서 우리는 친절함 한 그릇을 배불리 먹는다. 밤이 된 거리에 나와보니 창문마다 지치고 고달픈 친절함이 걸려있더라. 갓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대학생의 얼굴과 3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켰을 장인의 얼굴. 색깔은 다르지만 한결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 수많은 친절함을 엿보며 여행자로서의 행복감과 동시에 밥벌이의 보편적인 고단함을 느끼는 이곳, 이곳은 오사카다.


나카자키쵸로 가는 길에서 마주친 교통경찰 아저씨, 환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오사카의 익선동이라 불리우는 나카자키쵸에 가는 길이다.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버젓이 있는 곳에서 친절하게 웃음 짓는 교통경찰 아저씨를 마주쳤다. 아저씨를 보며,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기 전부터 우리의 노동력을 대체해 왔을 수많은 발명품을 떠올려본다. 만약 신호(Signal, Sign)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사람이 건널목과 교차로마다 서서 신호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겠지. 그렇지 않다면 네팔이나 인도의 거리처럼 먼저 엑셀을 밟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야생적인 교차로의 세상이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교통경찰은 지극히 안전한 건널목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한다. 왜 여기서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지나가셔도 됩니다"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미소를 지어주는 걸까. 초록불이 되면 노랫소리가 흘러나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이미 안전 장치가 마련된 일본이다. 그럼에도 교통경찰이 직접 서있는건 "더" 안전하게 만드는 장치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가 계속 지어주는 미소에서 말이다. 누군가에겐 초록불보다 먼저 그의 고귀하고 환한 미소가 신호의 역할을 할테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사카의 익선동이라 불리우는 고요한 마을로 가는 길의 문턱을, 그의 즐거운 미소를 초록불 삼아 건넜다.  


오사카의 익선동이라 불리는 나카자키쵸의 골목길
나카자키쵸 입구에 있는 다방이자 카레식당인 "QUEEN"의 주인 아저씨와 스태프
QUEEN의 다방식 테이블과 벽
QUEEN의 벽에는 한 소녀의 서툰 초상화가 걸려있다


나카자키쵸 마을의 입구에는 아주 작은 다방 QUEEN이 있다. 다방이지만 가정식 카레와 오므라이스 2가지의 메뉴로 식당도 겸하고 있다. 들어가자 마자 오지랖 넓은 아저씨가 우리를 반겨주셨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 싱글이냐, 몇일 동안 여행했냐, 언제 떠나냐 등등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셨다. 부족하지만 일본어로 대답하는 우리의 노력에 대항하듯 아저씨는 오히려 부족한 영어를 고집하셨다. 아저씨는 관광객들과 영어연습을 하는 모양이었고 우리는 질세라 일본어 연습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영어 단어 하나짜리 질문과 일본어 단어 하나짜리 대답이 핑퐁 핑퐁하며 다방의 여기저기를 부딪히듯 오갔다.


다방은 제법 오래되어 보였다. 10년도 더 된 보도자료들이 벽에 붙어있고 메뉴판은 색이 바래 가장자리가 찢어져있었다. 친절하고 시끌벅적한 아저씨의 사진을 남기고 싶어 포즈를 요구했다. 아저씨는 옆에 있는 여자 스태프를 가리키며 절대 내 아내가 아니라고, 우리 아내는 저 밖에 여럿 있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시끄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도 걱정마시라고 너스레를 떨고서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정말 저분이 그냥 스태프인지 아니면 아내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저씨만큼 따뜻하고 친절한 분이셨던 것만큼은 기억한다.  


교토 작은 골목 안 채소가게
속 보이는 채소들


나카자키쵸에 골목을 걷노라니, 교토의 작은 골목길들이 떠올랐다. 팬시하고 힙한 소품샵과 그릇가게들 옆에 아무렇지 않은척 들어서있는 야채가게를 기억한다. 관광객들이 오가는 곳에서 특유의 뻔뻔함을 발휘하며 지역에서 난 야채들을 팔고계셨다. 자신있다며 속을 훤히 내놓은 야채들처럼 관광지 한 가운데에서 자신있게 고개를 쳐 들고 있던 야채 가게. 그 모습이 참 좋았다.


꼬치구이를 팔고 계셨던 것 같다
네자메야 장어집의 사장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운 장어가 일품이다


후시미이나리 사원 앞의 골목길. 일본은 스트리트 푸드도 마치 장인이 만든 것처럼 정성과 온기가 가득하다. 무엇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일본인의 섬세하고 피곤한 직업관이 반영되어 있는 듯, 두건부터 전통복 차림까지 옷매무새도 다들 빈틈이 없다. 꼬치구이 아저씨, 당고 아저씨를 지나쳐 정말 먹고싶었던 네자메야 장어덮밥집으로 향했다. 일본의 서민적인 맛집들은 그 음식 자체가 굉장히 순수하다. 백화점에서 먹는 장어덮밥은 그 안에 여러가지 야채들로 장식도 되어있지만 이 집은 말그대로 따뜻한 밥 위에 장어 두 조각이 툭하고 올라와 있다. 반찬도 단무지 하나가 끝이다. 그 흔한 된장국도 나오지 않는다.


"도~죠" 친절한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소박한 장어덮밥이 도착했다. 한 입 먹는 순간. 소박함 또한 자신감의 흔적이었음을 깨닫는다. 고슬고슬하고 촉촉한 밥과 바삭바삭한 장어 껍데기. 베어물면 촉촉하고 부드러운 장어의 속이 따뜻한 밥과 고루 어우러진다. 이런 맛을 가졌으니, 따로 장식이 필요 없을 수 밖에.


라떼로 유명한 교토의 아라비카 본점
청수사 앞 골목에 위치해 있다.
디테일이 모여 브랜드를 만든다지?
쓰레기통에까지도 모두 %이 그려져있다.
서양인,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모두 좁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카페라떼로 유명한 아라비카 커피는 도쿄에서는 찾을 수 없다. 교토의 청수사 앞, 작은 골목에서 시작한 아라비카에게 도쿄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한국을 가든 일본을 가든 HIP함이 도처에 깔린 시대에, 아라비카는 자기만의 HIP함으로 확실히 밥벌이를 하고있었다. 시럽통부터 쓰레기통까지 로고가 한결같이 붙어있고 교토의 한적함에 어울리는 라떼의 맛에는 라떼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바리스타의 실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교토를 흐르는 강가에 앉아 라떼를 즐길 수 있는 아라비카 아라시야마점은 사람들에게 "아라비카는 자연주의 카페다" 라는 인상을 정말 "자연스럽게" 인식시키고 있다. 사람도 말이 많은 사람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더 신뢰가 가듯 브랜드도 마찬가지. 때로는 절제하고 때로는 지속하며 일관된 행동을 보여주는 브랜드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종이 지도와 돋보기를 꺼내자, 할아버지의 아날로그 네비게이션이 가동되었다.
"교통안전"


다시 오사카로 돌아와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100년 되었다는 오므라이스 전문점. 그러나 할아버지 택시기사님은 그런 가게는 없다고만 말하셨다. 핸드폰의 지도를 켜서 보여드리자, 할아버지는 돋보기를 꺼내신다. "오까시이네~(이상하네)"만 반복하던 할아버지의 비장의 무기는 종이 지도. 꽤 오랫동안 무기고에서 안꺼내셨을 것 같은 종이지도에서 퀘퀘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동그랗고 굵은 돋보기로 지도를 꿰뚫어보듯 한 참을 보고서는 출발하시던 할아버지. 길가에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마라톤 경기 중이라고 친절히 설명해주시던 할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다. 끝까지 내가 잘 데려다 준 것 맞냐고 확인하시던 할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다.


오사카에 밤이 찾아왔다.
야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
밤 늦은 시각, 한 덕후DVD 판매점의 알바생과 사장님


오사카에 밤이 찾아왔다. 일본의 밥벌이는 우리 나라처럼 밤에도 활발하다. 얼마 전 일본의 한 광고회사 직원이 자살했던 사건이 떠오르면서 기나긴 밥벌이의 서러움을 생각했다. 24시간 편의점의 시초인 일본은 그런 밥벌이의 고됨을 누구보다 체화한 나라일 것이다.


새로 발매된 DVD와 책에 대한 전단지가 통유리 한쪽을 가득 메운 가게가 있었다. 어떻게 통칭할지 모르겠지만, "덕후들을 위한 DVD및 책가게" 정도이려나. 창문을 가득 메운 전단지 사이로 전단지 사이즈의 틈이 나있다. 그 틈으로 열심히 돈을 세는 아르바이트 생과 지켜보는 어른이 보였다. 일본의 수천만 매니아들이 존재하기 위해 그 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작은 노력을 하고 있을까. 또 그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 노란 전단지 사이로 새어나오는 형광등 빛이 왠지 처연하게 느껴진다.


한 농장에 대한 책과 농장의 굿즈들을 함께 진열해놓은 츠타야.
잡지와 안경의 조화.
TOKACHI DESIGN FARM PROJECT
책 커버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다른 굿즈도 함께 진열되어 있다.
츠타야의 자유로운 공간.
요리 서적 코너에는 요리 도구들이 판매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감을 주고 있는 츠타야 서점이 있다. 처음엔 노인 세대를 위해 책의 주제에 맞는 상품들을 진열하는 서점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츠타야. 지금은 일본의 전세대가 자랑스러워하는 새로운 형태의 비지니스로 자리잡았다. 전에 한 인터뷰에서 츠타야는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LIFE STYLE IMAGE를 판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사카의 우메다역에 있는 츠타야 역시 여러 책 코너 별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된 제품들을 함께 진열해 놓고 있었다. 디자인 팜 프로젝트와 관련된 책이 있다면, 그 프로젝트 관련 굿즈가 진열되어 있고. 요리 코너엔 지역별 감미료가. 안경 코너에는 안경과 관련된 혹은 패션과 관련된 잡지가 진열되어 있다. 상품을 파는 브랜드 샵들도 책과 책 사이 곳곳에 들어가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책 표지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상품을 함께 팔던 코너였다.


이 모든 것들이 결코 일본인의 친절함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걸음에 책과 그 책에서 연상할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엿보게 하는 것. 어쩌면 가장 1차원적인 친절에서 시작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이 친절함의 혜택을 보는 건 절대 고객만이 아니다. 책을 쓴 작가와 앞으로 책을 쓸 글쟁이들에게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책이라는 물건이 가진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니 말이다. 언제나 책은 '커피에 관한 책', '자동차에 관한 책', '사진에 관한 책' 처럼, 다른 사물의 아류였다면 츠타야 서점에서 책은 모든 상상력과 연상의 마인드 맵의 중심에 놓여있다. 이 책 하나에서 출발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니까 말이다.


크고 작은 곳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일본인들의 친절함을 따라 여행하니, 일본 여행은 그 언제가더라도 만족스럽다. 때론 고달프고 처연한 얼굴의 친절함도 보이지만 그마저도 여행자에게는 또 하나의 유대(紐帶)다. 스쳐지나가는 타지의 사람들과 더 깊게 연결될 수 있는 근거랄까.


친절한 밥벌이의 모습에 흠뻑 젖은 여행, 오사카였다.



카메라, FUJI X-100T / Galaxy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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