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은 시간이 멈췄다.

아버지가 없어졌다.

by 한여름

아버지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온 날 밤, 아버지는 홀로 병원을 배회했다. 아니, 그랬다고 한다. 한번 간병인에게 맡기고 떠나온 뒤, 나는 한번도 병동 안으로 들어가본 적이 없다. 코로나 시대의 병원은 떠난 간병인의 접촉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락앤락에 소분한 갈비탕이며, 추어탕이며, 씻고 꼭지를 딴 과일 같은 것들을 들고 병원에 찾아갔다. 아버지를 두고 나온 마음이 그렇게 하면 조금 나아질까 싶었다. 그러나 간병인은 이렇게 먹을 걸 매일 가져오면 너무 불편하다고 불평을 했다. 한번 보낸 그릇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에 들어가보지 못하는 나는 음식들이 아버지께 닿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버지는 침울해 보였다.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떠날 때 우는 아이와 같이, 내가 떠날 때 아버지는 침울했다. 아버지는 약해졌고, 보호자가 필요했으며, 알고 기억하는 사람이 적었다. 아버지는 음식이 아닌 보호자인 내가 없어서 기운이 없었다.


아버지는 병동을 옮기고 나서야 회복되었다.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아버지를 간병인이 없는 간호간병통합 병동으로 옮겼다.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환경이 아버지에게 활기를 주었다. 아버지는 다시 밝아졌고, 허세를 부렸다. 여기서 자신이 세수도 하고 면도도 하고 심지어는 빨래도 한다고 말했다. 평생을 혼자서 집안일을 다 해왔던 아버지는 그런 일들이 직접 하는 쪽이 익숙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조금 더 일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벼르고 벼르던 시간을 내어, 아버지가 살던 집에 갔다. 3년 전, 서울에서의 직장을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러 이사한 아버지의 집. 병동에 갇혀 있는 동안 밀린 관리비만을 내며 ‘대체 그 곳은 어떻게 되어 있지?’라는 생각만 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보았다.


사고가 있던 날, 아버지는 전화를 걸어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표를 샀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사고가 났다. 그때, 기차 시간을 몇 시간 앞두고 아버지가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아버지의 집은 그 외출이 길게 의도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나가서 무언가를 하고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다소 부주의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 흩어져 있는 옷과 신발, 식탁 위의 바나나 한송이, 그리고 음식들이 다 정리되지 않은 주방이 그대로 멈춰져 있었다. 가스렌지 위에는 먹다 남은 찌개 냄비 하나가 놓여있었고, 그 냄비는 잠시 후에 돌아와 치워 질 예정이었을 것이다. 그 후, 아버지가 병원에 있고, 나와 누나가 번갈아 가면서 회사와 병원을 오가는 동안 아주 잠시의 외출만을 생각했던 빈집은 생각지 못한 긴 시간의 외출을 맞았다. 그 사이에 모든 것은 그대로 멈춰 있었으나, 냄비 속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비어 있는 집과 남은 찌개, 식탁 위의 바나나는 생명체의 발현을 실험하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그 생명체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번성하고 죽고, 또 탄생하기를 거듭해, 방안을 날아다니는 세대들이 뒤덮고 있었고, 사체가 바닥을 채우고 있었고, 그 뒤를 있는 새로운 생명이 냄비를 채우고 있었다.


벌레로 가득한 아버지의 집을 수습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수많은 구더기들과 파리들의 흔적을 거둬내자, 방은 다시 5월의 어느 순간으로 멈춰졌다. 잠시라도 정리하려는 시도가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의 방을, 그렇게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찌개를 끓이거나, 이불을 정리하지 않고 빨랫감들을 아무렇게나 내평개쳐 놓는 일들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나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일상에만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무심코 남겨져 흔적이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은 반대로 ‘사라진 어떤 존재가 있었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계셨으나, 기차표를 사고, 찌개를 끓여 점심을 차려먹고, 자전거를 타고 볼일을 보러 가는 아버지는 없어졌다. 낯설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버지를 곁에서 간병하는 동안에는 아버지의 부재를 느낄 새가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옆에, 단 10분도 떨어지지 않은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집에 흔적은 남긴 아버지는 없다. 그 아버지는 사라졌을까. 혹시라도 섬망이 심해지는 새벽 네시나 다섯 시쯤. 낯선 병원에서 눈을 뜨면, 혹시라도 모든 의식과 생각들이 돌아오는 순간이 있을까. 그런 상황이 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느 날 갑자기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고, 무언가 생각만 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픈 이 상황에 눈물을 흘릴까. 나는 지금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성격과 말투를 가지고 있었지만, 몇몇 기억들은 없고, 진지하거나 깊은 이야기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아버지가 기차표를 사놓고 어디를 가려고 했는지 물어도 대답할 줄을 몰랐다. 아버지는 여전히 병원에서 세수와 빨래를 하고 있지만 이 집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아버지는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은 어지러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우편함에서 조금은 두툼한 편지 봉투하나를 보았다.


보낸이 대전광역시 동구청 사회복지과


보낸이와 받는이가 출력해서 붙여져 있지만, 사람의 손으로 부쳐진 것이 틀림없는, 그냥 통상적인 고지서는 아닌 하얀색 우편물이었다. 고지서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보낸이는 대전광역시 동구. 행정기관에서 보낸 것이니 고지서일 수도 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는 동구에서 살았다고 들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뭔가의 연고를 찾아 안내문이나 고지서가 하나 쯤 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그것을 보는 순간부터 나는 이것이 위험하거나 부끄러운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그것을 급히 가방으로 집어넣었다. 숨겨야 할 것을 미리 발견이라도 한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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