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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황 Dec 04. 2021

말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럼에도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좋습니다.




완연한 가을이 거리에 펼쳐져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걸었고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약한 식당 시간이 남아서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서먹하다고 말하기에는 시간이 좀 흘렀지만 여전히 말을 많이 할 만큼 사람이 좋아지지는 않을 시기에 좋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사람들이 좋아지려고 했습니다.

카페에는 점심시간이라서 그런 건지 커피가 맛있는 집이라서 그런 건지 꽂아진 꽃들이 예뻐서 그런 건지 5명이 앉을자리는 없었습니다. 커피가 나오고 초록색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카드가 예쁘다는 말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는 길어지지 않았고 우리의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의 소리에 묻히고 더 길어지지 않았습니다. 넓은 테이블 자리가 나서 우리는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나는 말 수가 점점 줄고 있는 시기라서 어떤 말도 입에서 돌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말이 늘거나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는 않습니다. 흥미를 나누고 싶지도 생활을 공유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생각하지 않은 시간이 길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구멍에 빠져 있는 느낌을 들고는 했습니다. 말을 해도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생각보다 좁은 구멍에 빠져 있는.

테이블은 더 넓어지고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큰 소리로 말해야 했는데 나는 전의를 상실한 채로 입을 더 굳게 다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인 건지, 요즘에 없는 건지 좀 궁금해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런 궁금증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채로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어 예약한 식당으로 돌아갈 때 같이 걸었던 길이 좋아서 그렇다고 말할 뻔했지만 사람들의 얼굴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 말들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걷는 일에 집중했고 식당으로 돌아가서도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하지는 않았습니다. 생각이 사라지고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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