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마음 - 2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by 콩작가

아빠라고 불러야 할지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편지의 시작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써봐야지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 저는 마음이 조금 허전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감사함을 5개씩 적고 감사함에 대해 음미를 하고 출근 준비를 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허전했어요. 그리고 편지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편지를 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살면서 어버이날 학교에서 억지로 쓰게 한 편지 외에 이렇게 길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한 번도 드리지 못했지만요.


아빠 그거 아세요? 저는 아빠가 그렇게 가시고 11월쯤이 되면 언제나 항상 슬픈 마음이 되었습니다. 처음 3년은 돌아가신 지 얼마 안돼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부터는 옅어지기는 했지만 언제나 조금 슬프고, 그립고 그랬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는 11월과 12월이 되면 마음이 허전해서 혼자 술을 마신적도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참 애틋한 부녀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근데 생각해 보면 이런 마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때인지 첫 직장 때였는지 담배를 피우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담배를 막 피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고 나는 뭔가를 질문하기 위해 다가갔는데 매캐하게 나는 담배 냄새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욱 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어요. 전 그때 그게 설렘인가 생각했습니다. 또 저는 항상 외로운 사람들을 그냥 잘 두지 못했습니다. 무엇인가 쓸쓸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약했습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보다 마음이 허한 사람에게 언제나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언제나 그런 이들이 애틋했습니다.


그래서 얻어진 습관이 있어요. 저는 참 남의 말을 잘 들어줍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구석에서 그들이 울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세상에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이해해 주는 한 사람이라도 있다고 알아주기를 바라요. 저는 깜냥이 되지도 않으면서도, 해결책은 주지도 못하면서도 어렵고 우울하고 쓸쓸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기를 바랍니다. 덕분에 능력이 생겼어요. 너무 휘둘리지 않고 공감을 잃지 않으면서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우울한 이야기에 같이 나락으로 빠지지는 않아요. 그래서 상대는 항상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저는 괜찮다고 합니다.


그리고 홀로 서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이상합니다. 아빠의 통통했고 젊었던 모습은 기억이 안 나고 마지막 아팠던 모습만 기억이 나요. 그래서 볼살이 없고 초췌해 보이는 나이 든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어쩐지 아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저는 잘 몰랐습니다. 어느 날 이런 마음이 들고 가슴과 배에서 나비가 춤추는 것 같이 설렘인지 그리움인지 애틋함인지 슬픔인지도 모를 것들이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그 안에는 어린 제가 있었습니다. 아빠, 아주 오랜 세월 저는 아빠를 사랑했다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기 위해 방황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 안에 저는 아빠가 너무 좋아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였습니다. 목마를 타고 목에 매달리고 까끌한 수염을 내 볼에 문지르고 무릎에 앉아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어요.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리에 매달리고 등에 매달려 몸을 흔들며 놀아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어요. 아니, 놀아주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그냥 너무도 그립고 좋았습니다. 그 어린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무거워졌던 걸까요? 우리 사이에 무엇이 이 마음을 채우지 못하도록 한 것일까요?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는 사랑에 대한 부재는 그리움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담배 냄새에도 그리움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동시에 저는 아빠에게 너무도 미안합니다. 좋은 딸이 되어 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빠가 그 길거리에서 울었을 때, 서툰 표현으로 술을 마시고 와서 귤이며 선물을 잔뜩 싸가지고 왔을 때, 무작정 화를 내다가도 내 눈을 바라보면 느껴지는 아빠의 죄책감도 실은 어린 저는 알았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마음을 피부로 느끼는 법이니까요. 실은 저는 아빠가 아주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외로움을 한 번도 보듬어 주려고 하지 않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제가 참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홀로 울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애틋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아빠의 얼굴로 보입니다. 이해받지 못함의 슬픔을 느낄 때마다 아빠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디에서 혼자 울부짖고 있지는 않을까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이 따뜻함을 알아가기를, 그 따뜻함에 이끌려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거 아시나요? 아빠가 돌아가기 전부터 저는 혼자 기도를 올렸어요. 저는 불교도도 아니고 종교도 없지만 간절히 다음 생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삶에 꼭 다른 기회가 아빠에게 주어지길 바랐습니다. 그때가 오면 아빠는 아주 귀여운 딸을 데리고 산책을 나갈 거예요. 그 딸은 훌쩍 커 20대가 되어도 애교스럽습니다. 표현할 줄 알고 아빠의 팔짱을 끼는 것도 너무도 자연스러울 거예요.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것도 자연스럽겠지요. 아빠는 너무 흐뭇하고 행복함을 언제나 느낄 겁니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인생에 이것저것 굴곡은 있었지만 사랑해 주는 많은 이들에게 싸여 있으니 행복할 겁니다. 유복하고 편안할 거예요. 그런 삶이 아빠에게도 오기를 바랍니다. 이 생에 어느 순간에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더 진하고 깊게 느끼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저의 기도는 이루어졌나요? 아빠는 지금 행복한가요?


저는 행복합니다.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저에게 아빠와 엄마는 아주 꼭 맞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표현할지도 몰랐고, 아빠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도 정작 아빠 앞에서는 오래 사시라는 말 한마디 못한 사람이었지만, 그 아픔이 병이 되어 이렇게 무엇이든 쓰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삶에서 따뜻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요. 엄마의 적당한 무심함으로 독립심을 키웠고,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나 좋습니다. 기쁘고 좋아하는 것을 잔뜩 표현할 수 있어서 너무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온갖 것들을 마음 안에서만 채워왔던 제가 이것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표현하는 기쁨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아빠가 삶으로 알려준 길들입니다. 아빠도 제가 좀 더 다르게, 행복하게 살다가기를 바라셨겠지요?


아마 그러셨을 겁니다. 예전에 아빠가 술에 취해 오매 너무 예쁜 딸인가.. 시집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시집을 저에게 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게 너무 짜증 났어요. 왜 술을 먹고 이딴 걸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그게 아빠가 표현할 줄 아는 최대의 사랑이란 것을 알았더라면 저는 감사하다고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해해 주세요.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 없는 저는 아빠의 마음을 사실은 알았으면서도 말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빠가 아빠의 마음을 우리가 알아주기를 바랐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진짜 웃긴 부녀입니다. 이토록 표현이 서툰 사람들입니다.


아빠, 그러니 지금 있는 곳에서는 마음껏 표현하세요. 마음껏 웃고, 마음껏 울고. 뭐든 마음껏 해보세요. 남자라는 이유로 참지도 말고, 아빠라는 이유로 참지도 말고, 남편이라는 이유로 참지도 말고, 큰 아들이란 이유로 참지도 말고요.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유롭게 살며 온몸 가득 충만함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틱낫한 스님이 말한 것처럼 제 삶에 곳곳에서 아빠와 함께 걸을 거예요. 함께 기뻐하고 함께 웃으며 살아갈 겁니다. 아빠의 상처까지 함께 할 겁니다. 그러니 저는 잘 살아야겠습니다. 아빠가 저에게 말해준 삶은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살라고 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요. 아픔을 보듬어 가며 살아가길 바란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 저는 우리 조카들, 미래의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 편지를 끝으로 저는 아빠를 자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억지로 그러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이번 생에는 이렇게 이별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움이 병이 되어 제 삶의 곳곳에 아빠가 숨겨져 있었지만 이제 놓아주려고 합니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 하나 간직하고 제 삶은 한 걸음씩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아빠도 언제나,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던 건강하길, 행복하길, 불안감 없이 안전하길, 삶의 두려움 없이 편안하길.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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