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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May 28. 2023

그래요, 나 센 여자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 다행입니다.

비가 오는 새벽에 일찍 눈을 떴다.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약속이 있는데 그전에 빨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번주에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하고 아주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서 그런지 밀린 빨래가 참 많다. 안 되겠다 싶어서 코인세탁방을 찾았다.


비가 오는 소리,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 기계음을 들으며 조용히 혼자 앉아 있는 아침. 소음 속에서도 고요하다. 무슨 글을 쓸까 이리저리 생각하다 ‘강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말이지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도통나지 않는다. 문구를 인용하고 싶어서 읽은 책을 한참을 뒤적였는데 어떤 책에서 읽은 것인지 찾지를 못했다. 어떤 작가의 말이었다. 언제나 집에서 자신이 많은 것들을 책임지는 인생을 살았더라고 했다. 부모, 형제, 남편, 자식도 챙기고 보살펴야 했고, 그럴 때 항상 고독했다고 했다. ‘왜 나는 의지할 곳이 없지?’ 혹은 ‘왜 모두들 나한테 의지하는가?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세상과 상대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 있었는데, 어느 날 깨달았다고 했다. 자신이 모두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고.


‘강하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꽤 이런 이야기를 들어온 편이다. 사실 알고 보면 의지박약에 매일 같이 흔들리고 방황하는 인간이건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강하고 세 보여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홀로서기를 일찍부터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많은 지방인(?)들이 그렇겠지만 20대부터 자취를 했고, 부모와 거리를 두고 산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독립이 일찍 시작되는 것 같다. 그때부터 나라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치열한 고민이 시작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생활력이 강한 편인 점과 누가 봐도 체력이 좋아 보이는 점 때문인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미국행을 결정해서 그곳에서 별 것 아닌 공부지만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다 취업을 한 것도 사람들은 그렇게들 말했다. 생활력이 강한 것 같다라던가, 늦은 나이에 그런 결심을 한 것은 대단한 것 같다라던가.


한편 강하다는 이야기가 마치 내가 가진 단점인 것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미국에서 일을 할 때 우연찮게 해외를 돌아다니는 일을 하게 되었다. 마케팅을 하고 있었는데, 영업과 마케팅은 떼려야 뗄 수 없었고 마케팅을 위해 영업을 경험하기를 원했던 사장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국제적인 박람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서 미국 전역과 세계를 돌아다녔다. 시카고, 뉴욕, 라스베이거스를 가고 이탈리아, 두바이, 베트남을 가고 미국도 외국인데 미국에서도 외국을 돌아다녔다.


베트남을 갔을 때였던가, 아니면 다른 때였던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한국에 들렀다가 다시 미국을 갈 일이 생겨서 나는 캐리어를 끌고, 순천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서울에 있던 짐과 집들을 모두 다 정리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 인천공항에서 순천을 간다는 것은 엄청난 이동 거리이었지만 그래도 엄마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갔었다.


캐리어 2개만 이끌고 집 대문을 들어가는데 엄마가 반겼다. 그날 저녁이었나, 함께 밥을 먹는데 엄마가 울었다.


“홀홀 단신 세상에 짐 2개뿐인 사람처럼 대문을 걸어 들어오는데 눈물이 나더라.”


당황반 걱정반, 묘한 슬픔반으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의 말이 마치 혼자 고생스럽게 살아가는 팔자 센 여자의 삶을 지칭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 마음이 이상하고, 홀로 일을 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비하되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던 것 같다.


종종 여자에게는 ‘세다’는 말이 그렇게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 것 같다. 어른들도 그런 말들을 자주 하지 않던가. 이 사회가 유교 사회였고 블라블라 이런 다양한 분석은 차지하고 통상적으로 편안하고 보호받는 인생을 우리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엄마의 그 말이 억울하고 서럽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 뒤로 가끔 이런 말들을 직장상사에게서도 남자들에게서도 듣는다. 그럴 때 100% 칭찬인 것 같지 않은 뉘앙스를 담고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어쩌라고 하는 심정으로 넘겨버렸다.


하지만 오늘 코인 세탁방에서 ‘세다’는 말과 ‘강함’에 대해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세서 다행이다.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능력을 기르고 여러 가지를 경험해서 참 다행이다. 온실의 화초가 아니라 들풀처럼 살아서 다행이다.


좌절과 절망, 슬픔과 우울을 겪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부정적인 경험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모든 것들을 억울하지 않게 생각해서 다행이다. 겪고 난 후에 세상과 타인에 대한 원망만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이라 다행이다.


친절함 다정함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좋은 것을 보고 좋다고 여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리숙함과 방황이 때로 삶에 필수 요소 중 하나임을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실수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나의 강함이 누군가의 의지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누군가 힘들다 말할 때 나는 살아온 삶들을 되짚어 본다. 내가 가진 강한 생활력, 기회들, 사람들, 도움의 손길들, 무너질 때 일어날 수 있는 의지력들까지. 해봤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면들이 있음을 안다. 그렇기에 의지하라고 말할 수 있어서 참 고맙고 고맙다.


누군가의 품에서 보호받는 작은 아기새처럼 살아가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어려움 없이 사랑받으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흉내 낼 수 없는 맑음과 사랑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나의 강함은 다른 사랑스러움이 있다. 내가 누군가의 믿음직스러운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나의 강함이 든든한 배경처럼 느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백도 없지만 보이지 않은 나의 내면이 그 누군가에게는 함께 있어 든든하다고 생각되길 바란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가진 능력과 힘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쓰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 감사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일 수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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