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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Jun 06. 2023

코끼리를 매어 놓은 줄을 끊고

작은 성취의 경험들이 중요합니다.

코끼리를 매어놓은 줄


처음 러닝을 배울 때의 일이다. 달리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였다. 1km가 길게 느껴지고 어떻게 그 이상을 달리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회사에서 꾸준히 달려온 사람과 함께 달릴 기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1km 정도를 함께 뛰다가 그 뒤로는 먼저 뛰어 가라고 하고 나는 걸었었다. 오래, 먼 거리를 뛰는 것보다도 그냥 짧게라도 뛰어보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같이 뛰는 분이 오늘은 5km를 달려보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안될 것 같기에 힘들 것 같다고 했다. 5km라.. 내 인생에서 뛰는 걸로 5km를 달성할 수 있을 거라 상상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그분은 자연스럽게 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었고,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해줬다.


3km가 넘어가자 숨이 턱 막혀오는 것 같고 옆구리가 조여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안 되는 건가. 마음은 이미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신체 증상이 버겁게 느껴지고 다리가 무거워지는 것 같고 쉬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같이 뛰는 분은 그럴 때 속도를 줄여주며 다시 수다를 이어갔다. 뛰면서 평소같이 자연스럽게 수다를 떠는 모습이 정말 대단했다. 나는 숨이 차고 조이는 옆구리와 묵직해지는 종아리에도 마음을 집중하지만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도 집중했다. 그렇게 유야무야 어떤 한계를 넘어가자 갑자기 심장박동이며 숨이 자연스러운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같이 뛰던 분이 말했다.


“여기까지 뛰면 5km야. 이런 코스로 오면 5km 정도가 되더라고. “


그분은 별생각 없이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그날 나에게 5km를 뛰어보자고 한 것도 별생각 없이 제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로 나는 내 안에 있던 한계가 하나 깨졌다. 5km가 죽을 만큼 힘들고 먼 거리가 아닌 걸 몸이 체험으로 인지하자마자 그 뒤로 6km가 가능해지고, 10km를 뛰는 것이 괜찮은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얻은 깨달음은, 생각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한계를 설정하는가? 였다. 나의 마음속에는 또 어떤 5km 달리기와 같은 한계를 설정해 두고 살아갔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누구나 아는 이야기 속 코끼리와 같은 거다. 코끼리를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줄을 매어 두고 기르면 코끼리는 커서도 그 줄 길이만큼만 돌아다닐 뿐 그 이상은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코끼리에게는 생각으로, 경험으로 각인된 어떤 한계가 평생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혹시 당신에게 나이가 한계로 다가오나요?


이런 생각이 만든 한계는 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봤다. 단연코 나이가 아닐까 싶다.


내가 26살 때 갑자기 진로를 바꿔 다른 회사에 취업을 하려고 했었다. 그때는 대학을 휴학 없이 졸업한 사람들도 많았었기에 26살이 어떻게 보면 많게 느껴질 때였다. 진로를 바꿔서 일단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준비한다는 말에 누군가가 그랬다.


“스물여섯? 곧 서른이네? 아주 젊은 나이는 아닌 거 알지?”


그때 나는 나도 안다는 말을 하고 불안함에 하루 10시간씩 토익공부를 하며 취업을 준비했다. 그후 30대가 되어 다시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어이가 없었다. 26살.. 내가 30대에 생각하니 그 나이는 애나 다름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늦고 무엇이 어리지 않다는 말인가?


20대 후반에 내 친구는 유학을 준비했는데 교수님이 너무 늦다는 이야기를 해줬다고 나에게 말해줬다. 지금 석사를 미국 가서 받으면 박사가 몇 년이고 그러면 졸업을 하면 빨라도 30대 후반이고 어쩌고. 그때에 우리는 10년이란 세월이 너무도 오랜 시간 같아서 그 말에 동의를 못하고 퉁명스럽게 반응하면서도 불안했었다.


그리고 30대 후반이 되어서 그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그때 그냥 했더라면 나 지금쯤 박사 끝났어. 그런데 말이야. 전혀 늦은 나이 아닌 걸 이제야 알겠어. 그냥 할 걸 그랬어.”


그때 우리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무엇이 늦고 무엇이 빠르다는 것인지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나이의 기준은 맞는 것인지 우습기만 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 헤어지고 가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두 엄마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아이들의 영어는 언제 시작하는 것이 빠른가? 였다. 그리고 한 엄마가 말했다.


“7살? 아휴.. 늦어요. 더 빨리 시작해야 더 좋아요. “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아.. 7살도 늦다. 무엇을 시작하기가. 그렇다면 언제 시작하면 빠르고 언제는 늦는다는 세상이 말하는 논리는 다 헛소리라는 이야기다.


세상은 나이에 한계를 정한다. 미니쿠퍼를 중고로 산 나에게 누군가 말했었다. 더 나이 들면 못 타는 차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왜? 도대체 이런 건 누가 만들어서 배포하고 유포하는 것일까?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이제는 이것만 알 것 같다. 자신의 한계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지 남들이 정해주는 게 아니다. 만약에 자신이 나이 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나이 때에는 더 이상 안 되는 걸 알지 않냐고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이 정한 한계가 아니다. 바로 자신이 자신에게 정한 한계고, 자신이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일 뿐이다.


5km의 벽처럼 나이 듦에 따라 세상이 나를 다르게 대할 것이라고 미리 규정하고 해보지 않은 것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늙는다. 세월이 주는 객관적 진실은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마음이 정한 늙음에 대한 한계와 실제 내 몸이 늙어가는 현상을 인지하는 것은 다른 일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몸을 받아들이고 세월의 흐름에 내맡기는 것과 늙는다는 것의 두려움에 내 삶을 위축시키는 것을 구분하는 것, 그것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쌓여야 하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작은 성취의 경험을 쌓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몸은 기억하고, 마음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은 내 성취의 경험을 저장한다. 40대가 되어 신진대사가 떨어지는 것은 진실이지만 꾸준한 운동이 어디까지 몸을 변화시키는지도 아직은 모른다. 그래서 운동을 해보는 것이다. 나의 나이 듦은 내가 하는 노력의 어디까지를 수용해 줄 수 있는지 해보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몸에 무리가 되지 않은 선에서.


조금씩 도전하고 경험하고 성취하는 것. 이것이 내가 앞으로 한계를 극복해 가는 방법의 방향성이다. 그래서 요새는 작은 경험을 기껍게 한다. 글이 안 써지는 공간에 있을 때 글이 써지는 경험을 해보고, 사람들과 불편한 감정이 오고 갈 때 그것을 회복시켜 보는 경험도 해보는 것이다.


경험을 해봐야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경험으로 한계를 극복하면 그 이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하마드 알리의 명언처럼.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2023년 6월, 작은 성취의 날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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