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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Jul 21. 2023

사랑의 상태에 대해 생각합니다.

열림과 사랑에 대한 잡생각


사랑은 따스하고 평온하다.


어렸을 때의 일이다.


몇 살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로 기억한다.


나는 엄마 무릎에 누워 있었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비추고 네 가족이 모두 함께 자던 단칸방에는 따스함이 깃들었다.


엄마 무릎에 누워 있던 나는 나른하고 평화로운 기분에 졸음이 쏟아졌다. 엄마는 누군가와 이야기 중이었는데 손으로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 안에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엄마 손이 내 얼굴에 닿는 감촉, 나른한 기분까지.


마음이 따스하고 평온했다. 맑은 하늘 같이 밝고 따뜻한 고요만이 숨 쉰다. 방안은 따뜻한 물속 같다. 까무룩 잠이 들 것 같은 나는 기분 좋게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꾸벅꾸벅 존다.


사랑의 상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이때가 떠오른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고, 내 마음이 충분한 사랑으로 고요하고 평온하던 순간.





열림은 사랑이고,
닫힘은 두려움입니다.


언젠가 요가를 배울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다. 어떤 선생님께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나에게 어떤 통찰력을 줬었다. (* 참고로 저는 자이요가명상에서 요가 수련 중입니다. ^^)


동작을 할 때 두려움을 향해 마음을 열어내는 것, 편안하고 호기심 있게 다가가는 것, 그것은 사랑의 상태다. 그래서 항상 불필요한 긴장감은 뺀다. 사랑의 상태는 편안함과 열림을 의미하므로.


때로 두려운 동작이 나올 때가 있다. 머리로 서야 한다거나 불가능할 것 같은 요가 자세를 해야 할 때 그렇다. 그때 순식간에 마음이 닫히는 것을 느낀다.


두려움은 긴장을 만들고 마음은 닫힌다. 마음이 닫히는 느낌은 아주 미세하고 찰나다. 그러면 턱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가 굳는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리듬을 깬다. 두려움의 상태에서 최상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이유일테다.


어렸을 때 엄마의 무릎 위에서 나는 아무 두려움 없이, 거리낌 없이 웃었고 어리광을 부렸다. 편안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상태는 무엇을 하는데 두려움이 없다. 고요하고 차분하며 따뜻한 활력이 나를 감싼다.





마음을 닫지 않는 수련


최근에 수영을 배우고 있다. 물에 대한 공포가 있던 나는 물과 다시 친해져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음~파, 음~파 호흡을 연습하는데 고개가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두려움이 앞섰다. 이때 긴장하려는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물이 얼굴에 닿는 느낌을 느끼고 물소리를 느낀다.


물속에서 내 몸의 감각을 느끼고 몸에 힘을 뺀다. 긴장이 사라지자 수영장 물이 있는 그대로 보이고 어느덧 어렸을 때 물놀이 하던 즐거움이 올라온다.


어렸을 때 순천에 수영장이 하나 있었다. 오빠와 나, 오빠 친구들, 내 친구들 이렇게 몇 명이서 항상 1시간 정도 걸리는 길을 터덜터덜 걸어서 수영장에 갔다.


특히 여름이면 더 자주 놀러 갔는데 물안경과 수영모자, 수영복만 있으면 하루 종일 푸지게 놀았다. 물이 두려웠던 적도 없었다. 내 마음속에는 즐거움과 호기심 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숨 참기 놀이도 하고 누가 잠수를 더 오래 하나 내기를 하기도 했었다. 물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웠고 물속에서 노는 일은 세상 그 어떤 일 보다도 좋았다.


그렇게 수영이 끝나고 나면 기분 좋은 피로에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으면서 친구들과 아지랑이가 피는 뜨거운 도로를 따라 걷는 것도 즐거웠다.


오늘 처음 키판을 이용해 레일을 따라 수영을 하며 호흡을 연습했다. 마음이 평온했다. 마음이 평온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고 모든 것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 할 때 숨은 자연스럽게 나가고 숨이 다 나가면 다시 올라와 파~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리듬을 따랐다. 물속에서 하는 호흡은 자연스러워지고, 평온한 마음으로 물살을 가를 때의 전신의 움직임과 기분 좋은 물의 느낌을 온전하게 느꼈다.


그때부터 올라오는 즐거움. 물에 충분히 마음을 열었더니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운동을 하는 건지 즐거운 물놀이를 하는 것인지 모를 기쁨과 활력이 충만하다.





물을 충분히 믿는다.


어렸을 때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수영장에서 빠질 것 같을 때 이것만 기억하라고. '몸은 물에 뜬다는 것. 물은 몸을 충분히 받쳐준다는 것, 그러므로 두려움을 갖지 말라'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린 현자의 말이다. 물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 위에 뜬다는 것도 믿으라는 것이었다.


그 말 한마디가 물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평온함을 줬다.


신뢰하라는 말.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 왜 의심이 때로 삶을 살아가는데 어떤 방해를 일으키는지를 관찰해 보라고 하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수영은 내 움직임과 의지로 물을 가르지만, 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그대로 수용해 함께하는 운동이다. 물이 나를 충분히 받쳐주고 있음을 신뢰할 때 힘을 뺄 수 있다. 힘을 빼면 다리는 자연스럽게 물 위로 떠 오른다.


사랑의 상태가 주는 것은 인식의 확장이다. 두려움과 닫힘의 상태는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평안하고 고요한 상태에서는 나를 둘러싼 물의 존재도 느끼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느낄 수 있다.


오늘 레일을 따라 키판에 의지해 수영을 하는데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발차기에 물이 튀어 물이 코와 입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과정이 평화롭고 느리게 보였다. 긴장이 풀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물이 나에게 와닿는 것을 느꼈을 뿐 당황과 두려움은 없었다.


@pixabay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김광석의 주옥같은 노랫말에는 깊이가 담겨 있었다.


어렸을 때 사랑은 강렬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소유욕을 불러일으키고, 집착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도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사랑을 다른 무엇으로 착각했거나 사랑에 섞인 기대, 욕망, 다른 감정들을 사랑과 구분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사랑은 고통을 주지 못한다. 사랑과 두려움은 양립하지 못한다. 충분한 사랑의 상태에서는 엄마 무릎에 누운 그때처럼 평온하고 따뜻하며 두려움 없이 행동하고 거릴 것 없이 웃을 수 있다. 맑고 순수한 기쁨, 충만함이 함께한다.


오늘 나는 누군가를 그리며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다른 무엇인가 되지 않아도 그가 예쁘다는 마음을 가졌다.


또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쓸모가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조건 없는 사랑의 상태를 연습한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받을 때와 줄 때의 나의 마음과 변화를 관찰한다.


조건 없는 사랑을 연습할 때 나는 엄마의 무릎에 누웠을 때 느꼈던 나의 마음을 떠올린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사랑을 주고 그 사랑을 담아 쓰다듬는 손길, 그리고 그 무엇을 하지 않아도 평온하고 따스하던 시간. 시간이 느리게 가는 기분.


그런 사랑의 상태를 사소한 일에도 연습하는 것이다. 힘을 빼고, 두려움은 가슴을 허공을 뚫고 지나가듯 지나쳐 가도록 하고. 물론 안 되는 날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엄마의 손길 같은 나의 따스한 사랑이 나를 향해 있다. 그 사랑이 내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말한다.


‘괜찮다. 실수하고 넘어져도 괜찮다. 또다시 시작할 수 있다.’


2023년 7월, 사랑에 대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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