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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Oct 24. 2021

슬픈 딜리버리

나누는 게 좋은 거야

12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서울 산꼭대기 어느 마을에 몽글 몽글 만두 찌는 냄새가 난다.

격일 근무이신 아버지는 다리미 방망이로 밀가루 반죽을 미시고, 엄마는 어제 만들어 놓은 만두소를 더 야무지게 다독이며 여러 번 맛을 보고 후추를 한번 더 톡톡 친다.

나도 소맷부리를 거두며 “준비 완료”를 외친다.

온 가족이 만두 빚을 만반의 준비를 끝낸 것이다.

안방 한가득 신문을 깔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만두를 빚으면 엄마는 제일 커다란 냄비 위에 누런 면보를 깔고 구멍 뚤린 채반 가득 만두를 찐다. 냄비 틈새로 뽀얀 김이 주위를 덮으면 드디어 만두가 익은 거다.


"애들아, 여보, 맛 좀 보세요.”


모두 달려들어 호호 뜨거운 김을 식히며 맛을 본다.


“엄마, 역시 맛있어. 최고야.”


"그래, 이맛이지."


일단 합격이 되면 우리 가족은 본격적인 만두 빚기에 돌입한다. 아빠는 다리미 방망이를 리듬에 맞추어 굴리고 언니와 나는 예쁘게 만두를 빚는다.

물론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는 빨리하는데 집중한다.


© matt_j, 출처 Unsplash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는 나를 부르신다.


“이거 앞집 00네 갖다 주고와.”


“응, 알았어.”


그 후 한 접시씩 양이 찰 때쯤이면 엄마는 또 나를 부르신다.


“이건 뒷집 00네 갖다 드려. 점심 식사시간 됐으니. 빨리 가.”

.....


“이건 00할머니댁 갖다 드려. 할머니 아프시 단다. 어여”


나는 만두가 쏟아질까 조심조심 접시를 들고 종종 걸음을 걷는다.

똑똑 문을 두드린다.


”할머니 저 미진이예요. 엄마가 이거 잡수시래요.”


“어머 여기까지 이걸 들고 왔네. 잘 먹으마. 아이고 맛나겠다.”


나는 쌩하고 돌아선다.


'도대체 얼마나 더 나누어 주어야 하는 거야. 난 아직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한 접시가 될 즈음 또 부르신다.

이미 내 입술은 저 만큼 튀어나와 있고 툭하고 건드리면 터질 듯 화가 나있다.


“어떡하겠냐……음식 냄새 풍기면서 누구 네는 주고 누구 네는 안주고 그럼 못써. 섭섭하지. 너도 다른 집 지나갈 때 맛있는 냄새 나면 먹고 싶지 않아? 나눠 주는게 좋은 거야. 너 먹을 것 충분히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갔다 와. 착한 우리 딸.”


겨울 밤은 빨리 찾아오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워도 미싱은 돌아가고 돌아가네’

우리 만두 공장도 점점 문 닫을 시간이 된 듯 막바지에 이른다.

허리도 아프고 어린 것들은 하루 종일 놀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하다.


드디어 마지막 집,


똑똑똑..... 

“ 아줌마, 엄마가 이거 드시 래요.”


“어머머…… 뭘 이건 걸, 고마워. 잘 먹을게. 미진이가 고생이 많구나. 아이고 착해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 참고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이내 꺼이 꺼이 눈물이 터진다.

횅하게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집 만두를 생각하며 우는 걸까?

하루 종일 놀지 못해 억울한 걸까?

12번 째 집에 만두를 전해주고 오는 길, 밤하늘은 참 슬펐다.

엄마는 나 몰래 교회 목사님이랑 고모들에게 줄 만두도 잔뜩 챙겼음에 틀림없다.

하루 종일 온 가족이 빚은 만두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차마 안보는 편이 낫다.


© itfeelslikefilm, 출처 Unsplash


어느새 엄마의 나이를 훨씬 지났다.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울 엄마, 할머니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 지금도 문득 떠오른다.


“남편 등골 빼먹을 년……”


엄마는 하늘나라에서도 그렇게 몸을 움직여 수고하고 또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계실까? 

12집 옹기종기 모여 살던 동네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엄마의 만두를, 바삭하고 고소한 부침개를 기억할까?


그랬다. 그들은 모두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혼자 남은 아버지를 여전히 가족처럼 살뜰히 챙기신다.

혜숙이네서 김치를 갖다 주고, 상희네서 생선을 갖다 주고, 숙희 엄마는 밑반찬을 문앞에 놓고 갔다.

부끄럽게도 시집간 두 딸 보다 아빠를 더 잘 보살핀다.

귀한 아들 등골 빼먹는 다고, 살림 헤프다고 구박받던 엄마, 

자기 먹을 것 줄어든 다고 질질 짜는 딸 틈에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웬걸 흉보다 닮는다는 말은 정녕 사실인가?

나도 동네에서 잘 퍼주는 아줌마로 소문이 났다. 

파전을 해도, 절편을 뽑아도 우리집만 먹기는 좀 찔린다. 평소에는 말도 안하고 서먹한 이웃들이지만 음식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뜬금없지만 한 접시씩 나눠주고 와야 맘편히 먹을 수 있다.


엄마의 그 넉넉한 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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