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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Oct 24. 2021

죽도록 걸을래

달려라 하니가 있었다.

13살 정희의 등교 길은 지옥행이다. 만리동 산꼭대기에서 출발하여 산 중턱에 있는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의 모교인 양정고등학교를 지나 대로변 육교까지 대략 10분, 거기서 서울역, 서부역까지 20분, 멈춤이라고 적힌 X자 신호등이 서있는 철길 건널목을 건너 합동시장 앞 경찰청 옆을 지나 학교 후문까지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어찌된 일인지. 뽀얀 얼굴에 예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뜬금없이 옆 동네 아이, 정희가 배정 되었다. 어쩌다 한 번 오는 버스는 있으나마나고 소요 시간도 걸어 다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서울역 앞에서 가장 크게 목욕탕과 여관을 하는 집의 큰딸 인혜도 정희와 같은 학교라는 걸 소문으로 알고 있다. 초등학교 6년 간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은 사이로 정희는 인혜를 잘 알지만 인혜가 정희를 알 리는 없다. 교실 뒤켠 몇 년째 아무도 빌려가지 않아 누렇게 먼지 쌓인 학급문고 같은 존재였기에 짝꿍 몇몇을 제외하면 정희는 익명 그 자체였다.     


전교생 일동은 인혜가 단상에서 온갖 상을 휩쓰는 걸 봤고 그녀 엄마가 학부모 대표로 하는 연설을 들었다. 컸다, 작았다 좀체 가늠할 수 없는 키를 가진 교장 선생님은 수시로 등굣길 학교 정문에서 용의 검사를 했다. 복장이 불량하다고 지적당한 학생들은 엎드려뻗쳐를 한 채로 못 받은 가정교육 이야기와 학교 명예를 떨어뜨린 죄, 나라를 좀먹는 벌레로 이어지는 일장 연설을 들어야했다. 이때만큼은 분명 교장선생님의 키가 컸다.  

     

학교에 손님이 방문해서 대청소를 하는 날이면 교장선생님은 허리가 반쯤 굽어진다. 키가 눈에 띄게 줄어든 어느 날 교장선생님은 학교 건물 정 중앙, 교장 선생님이나 장학사님들이 다니는 윤나게 왁스칠한 본관 건물 외벽에 걸린 대형 시계를 가리키셨다. 


“여러분, 그동안 우리 학교의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5학년 8반 김인혜 학생의 어머니께서 여러분 모두가 볼 수 있게 이렇게 큰 시계를 기증해 주셨습니다.”


학생들은 단상 위 인혜 어머니와 운동장에 서있는 인혜를 향해 두 번 박수를 쳤다. 인혜 부모님이 서울역 앞에서 제일 큰 제일 목욕탕과 제일 여관을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일급비밀 이었다. 노는 시간 운동장 한 가운데서 피구를 하다가도 시계를 보면 몇 분이 남았는지 알 수 있어 유용한 시계였다. 그렇게 칭송 받던 인혜는 6학년이 되어 전교회장이 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봄을 지났다. 한 시간여를 걷다 보면 제아무리 빳빳하게 다린 교복도 땀에 들러붙고 매연에 절어 꼬질꼬질해진다. 햇빛이 쏟아지던 어느 날 산꼭대기 집에서 출발해 하프마라톤 지점인 서울역 근방에서 인혜를 만났다. 


“얘, 너 봉래초등학교 나왔지?”


그 유명한 전직 전교 회장이 아는 척을 한다.


“응, 왜?”


“우리 같은 중학교야. 학교 가는 길인데 같이 가자”


어느새 반질반질 빛나는 흑표범을 닮은 자동차 한 대가 인혜 옆에 미끄러지듯 멈췄다. 창문이 열리고 인혜랑 꼭 닮은 남자어른이 정희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다. 




인혜 아버지가 주인인 목욕탕과 여관의 외관은 르네상스양식 건물에 둥근 지붕과 세련된 외관을 지닌 서울역과 닮아있다. 일본 관공서 같기도 서양 박물관 같기도 하다. 아마도 성공을 꿈꾸며 서울로 상경한 수많은 인파들 중 인혜네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이다. 암튼 포마드기름으로 한 올 남김없이 빗어 넘긴 인혜 아버지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나를 정지된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만들었다.     


“인혜 친구로구나. 같은 학교네. 빨리 타라.”


먼저 탄 인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정희에게 타라고 손짓한다.

상황이, 그놈의 상황이 베이지색 소가죽시트 위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수놓아진 프렌치 쿠션이 놓인 차에 정희를 밀어 넣었다.


“집이 어디니?” 인혜 아버지의 예의 가벼운 호구 조사가 시작됐다.


“양정 고등학교 위에요.” 배에 힘을 잔뜩 주고 기죽지 않게 대답했다.


“아휴, 멀 구나. 일찍 출발하겠는데. 앞으로 같이 타고 다녀라. 인혜도 심심하지 않고 좋지.”


인혜는 나를 만나 좋은 건지 심심하던 차 길동무를 만나 반가운 건지 연신 싱글거린다.     

이 모든 순간 정희의 생각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다.

처음 타보는 자가용, 오래전 택시를 타본 적이 있지만 어렴풋하다. 

가는 내내 오른쪽 옆 차 문고리를 힐끔 거린다. 

‘어떻게 열어야 되는 걸까? 이건가, 저건가. 먼저 탈 걸. 젠장, 하필 문이 내 옆에 있다니.’

반야심경, 주기도문이 터진다.

신심이 뜨거워졌다.


‘아~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싶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아무렇지 않게’


학교가 가까워 온다. 

계속 달리고 싶다.

학교가 보인다.

내려야 한다.

내려야 한다.

차가 멈춘다.


가방을 챙긴 인혜는 아버지에게 “다녀오겠습니다.”라며 깍듯이 인사한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희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열어야 한다.

당긴다.


‘실패다. 둘 중 하나, 반반의 확률이 내겐 0으로 수렴한다.’


“그 위에 거를 잡아당기면 돼” 인혜 아버지의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인혜의 손길이 미치기 전, 위에 불거진 부분에 손을 넣고 정성껏 당긴다. 


‘제발’ 


열렸다.



며칠 후면 두더지가 되고 싶다며 땅을 파고 숨은 여중생 기사가 신문 1면에 실릴 거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인혜와 정희는 실내화를 갈아 신고 학교에 들어간다. 내일도 만나서 같이 오자는 인혜에게 눈인사를 남기고 붉게 물든 얼굴과 더 붉게 얼룩진 마음을 짓누르며 정희는 교실로 향한다. 


‘아, 사는 건 힘들어.

차라리 죽도록 걷는 게 낫겠어. 

내 멋대로 그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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