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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n 14. 2023

아침에 이불개기

뭘 더 바래?

니트컴퍼니 전시회의 이불 정리하기 전시


아침에 이불을 갤 힘이 있다면 하루를 살아낼 힘도 있다. 이불을 정리하고 방바닥에 발을 디뎠다면 이미 엄청 많은 일을 한 거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간단한 청소까지 했다면, 그날 하루는 참 의미있는 하루다.


우울에 무기력까지 왔을 땐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게 힘들었다. 밖으로 나와도 걷는게 힘들어 멈춰선다. 숨이 찬 느낌과는 정반대다. 몸이 중심에서부터 고요하게 말라붙어서 발걸음을 뗄 수 없는 느낌이다.


마지막 단계에선 감정의 동요도 별로 없었다. 말라비틀어진 채 산에 박혀있는 고목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 그저 존재했다. 정신은 더이상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다만 도살장의 짐승이 머리를 치는 최후의 일격을 기다리듯... 의식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을 기다릴뿐이었다.


몸이 불편해본 사람들은 아침에 이불을 갠다는게 얼마나 큰 일인지 쉽게 이해한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해본 사람들도 잘 안다. 이불개기가 얼마나 위대한 도전인지. 이불 무더기가 에베레스트 산처럼 보이는 순간을 기억하니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이불을 개고 환기까지 시켰다면 살아갈 힘이 꽤 생긴다. 잠깐 상쾌해진 기분, 잠깐의 성취감에 의지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만일 오늘 아침에 이불을 갰다면,

그 일을 해낸 나를 칭찬하고,

이불을 갤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하자.


이걸로도 오늘 하루, 충분히 가치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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