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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n 26. 2023

재료가 무섭다

최선은 뭐고 최고는 뭘까


사실 뭔가 '재료'를 앞두고 있다는건 굉장히 긴장되는 일이다. 도자기용 흙도, 빈 스케치북도, 내 인생도 모두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가 가장 부담스럽다.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러나 정작 내가 최선이 무엇인지, 최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건진 잘 모르겠다. 한때는 우울증이 없는 명징한 두뇌 상태로 하루에 네시간만 자면서 순공 시간을 늘리는게 최선인줄 알았다. 그리고 남들이 가장 선망하면서도 갖기 어려워하는 것이 최고인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으로 안돌아가는 머리를 쥐어뜯고 울면서, 타우린이 가득 든 음료를 먹고 도서관 24시간 열람실에서 쪽잠을 자면서 버텼다. 최선을 다하려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걸 가지려고 뭔지 모르겠는 경주에서 열심히 뛰었다. 그게 최고의 결과물인줄 알았으니까.


나에게 재료는 항상 그런 긴장과 강박과 부담을 주는 것이었다. 도자기 수업에서도 그랬고, 인생에서도 그랬다.


재료가 가진 잠재성은 나에게 설렘이나 기대감 대신, 공포를 주었다. 나는 항상 누군가가 쥐어준, 이 재료가 이루어야만 하는 미래의 모습을 먼저 가진 채로 거기에 재료를 끼워맞추려고 했다. 이 재료가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하면서 과정을 즐기는 대신에.


만일 나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나는 아이에게도 그런 끔찍한 짓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내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어서 내 인생에서 아이는 일찍부터 포기했다.


나는 어떤 것이든 내가 만든 결과물을 긍정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긍정하고 나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존중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에겐 '나'라는 시작점이자 종착점이 아예 없었다. 내가 있어야할 자리에 남들의 인정과 기대가 대신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은 그랬던 내가 좀 짠하다. 그리고 슬프다. 최선, 최고, 완벽, 경쟁같은게 나에게 고통만 준다는걸 알고 많이 내다버렸지만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느낌이다.


오늘 직장에서 문득 그때의 내가 소환된 느낌이라 이 글을 쓸 생각이 났다. 나는 아직 헤매고 있다. 예전과 달라졌는데 얼마나 바뀐건지는 확신이 없고, 내가 머리로 아는 가치관을 진짜 실천할 수 있는지는 자신이 없다.


최선과 최고를 덜어낸 자리를 아직 진짜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하고싶은 만큼의 노력으로 채우지도 못하고 있다. 아무거나 해보려고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걸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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