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지나무 Sep 21. 2023

실수를 위한 미술재료

'사단법인 오늘은'에서 하고있는 아트퍼스트, 그중 '재료와 나' 수업의 세번째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실수가 명백히 드러나고 수정하기도 어려운 건식 재료들(목탄, 오일 먹인 목탄, 파스텔, 오일 파스텔, 색연필)을 사용하는 수업이었다.


건식 재료, 특히 오일 먹인 목탄이나 오일 파스텔을 손에 잡으면 부담감이 든다. 정확하게 묘사해야할 것 같고 잘못 그리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 평소엔 오일 파스텔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날은 조금 멀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목탄과 파스텔 위주로 그림을 그렸다.


목탄이나 파스텔이 주는 '번짐'은 마음을 좀 가볍게 해주었다. 진로에서도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을 때 마음이 편하고, 관계에서도 약간의 여지가 있을 때 압박감이 없는 것처럼.



재료들로 선을 긋고 연습하는 시간이었는데 오늘따라 나무를 그리고 싶었다. 먼저 오일 재료들로 연습을 해봤는데 지울 수 없는 선과 면들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마지막으로 그린건 은행나무였다. 나는 7살 때부터 은행나무와 함께 자라왔다. 처음에는 1층에서 자라고 있던 작은 나무였는데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즈음엔 3층 내 방 창문에서 맨 위의 작은 은행잎 한두장이 보였고, 중학교 때는 내 창문의 절반 정도를 덮었다. 고등학교 때는 이미 내 창문을 넘어서 옥상까지 자라버렸다.


우울증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이 은행나무와 함께 했다. 가슴 답답함으로 잠도 잘 수 없는 새벽 3시쯤 창문을 열면 검은 하늘과 은행나무가 보였다. 손을 뻗으면 은행잎을 잡을 수 있었다. 은행나무에게 말을 걸기도 했고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이 든 적도 많다.


태풍이 지나가는 날엔 은행나무는 마치 꺾이기라도 할 것처럼 앞뒤로 거세게 흔들리며 많은 잎들을 떨구었지만, 바람이 그치고 햇빛이 비칠 땐 언제 그랬냐는듯 꼿꼿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녹색의 싱그러움을 한가득 뿜어내면서. 그런 나무를 나는 마지막 잎새인 것마냥 바라보았다.


내가 창문 너머로 나무의 사계절을 본 것처럼 나무도 나의 사계절을 다 보고 있었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마지막으로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은행나무가 너무 커져서 그 뿌리가 옹벽을 부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25년쯤 된 그 나무를 베어버리게 되었다.


나는 밖에서 나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문득 나 자신도 함께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눈물이 나고 멍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순간 우울증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의 힘들었던 부분은 나무가 죽을 때 가져가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행나무 생각을 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햇빛이 없는 음지에서 자라나 오로지 햇빛을 보기 위해 가느다랗게, 위로, 위로만 자랐던 그 나무. 가장 힘든 순간을 나와 함께해준 그 나무...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 결심을 하고부터 브런치도 시작했고 어떻게든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


실수를 드러내기보다 부드럽게 감싸주는 목탄과 파스텔로 은행나무를 그렸다. 그 나무가 보고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러 겹의 파이, 그리고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