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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Oct 13. 2023

'만회'라는 불가능한 목표


만회. 꽤 오랫동안 생각해보지 않은 단어다. 이 단어를 마음에 갖고 있으면 우울감도 함께 품게 된다. 그래서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내버린 단어이기도 하다.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공부를 하더라도 뭔가를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 압박감을 갖게 된다. 현재 주어진 시간과 능력 이상을 짜내어 과거에 못 이룬 것들까지 복구해야하기 때문이다.


정의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회한다는건 어쩌면 불가능한 목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재에 주어진 시간, 능력, 기회를 쓸 수 있을 뿐이고 과거로 돌아가 추가적인 시간과 능력과 기회를 얻어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현재에서 출발하고 현재만 살아갈 수 있다.


만회는 압박감이라는 정서적인 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에겐 이 압박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만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더 높은 목표를 위해 전력질주하기도 한다.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반대로 압박감이 들면 오히려 굳어버리고 우울해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 경우에 속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만회'라는 두 글자를 붙잡고 나아가고 있었다. 이 모든걸 만회하면 우울증이 한번에 다 나을 줄 알았다. 사실은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우울을 가져왔던 건데 말이다.


지금은 더이상 만회를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걸 지금의 나에서부터 시작한다. 현재의 내 능력, 상황, 마음상태에서 시작하지 과거의 나를 끌어들이진 않는다.


만회를 한겹 들추면 나타나는 후회로 괴로워하기도 싫고, '만회해야 한다=현재는 불완전하고 잘못되어있다'는 프레임에 갇히기도 싫다. 나는 조금 비켜서서 현재의 내가 무엇을 갖고 뭘 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


눈을 크게 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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