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 Jul 14. 2019

위인들의 아르바이트


  텔레비전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본 프로그램들에 출연한 사람들은 보통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로 노래나 춤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재능을 살려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여의치 않아서 낮에는 편의점이나 주유소, 음식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그토록 꿈꾸던 자신의 무대를 마치고나서 인터뷰를 할 때 보이는 비슷한 모습은 눈물을 흘리면서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스무 살이 지나고 성인이 되었는데도 자신의 꿈을 위해서 부모님께 경제적 의존을 하고 있다면 문제는 다르지만, 자신의 밥벌이를 하면서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이상적이기 까지 한데 왜 미안해하고 서러움에 북 받혀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나는 그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미안해하기보다 오히려 더 당당한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에게 미안해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부모님이 원하는 안정적인 길을 걷지 않는데서 비롯된 감정일 것이다. 부모님이 원하는 안정적인 길은 걷는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한 불씨가 남아있는 한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형태가 너무나 옳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다른 방법 무엇이 이보다 더 낫겠는가? 

 먼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이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씩 현실적으로 타협을 해서 자신이 원하는 장르를 포기하고 좀 다른 음악을 하는 회사에 취업해서 돈을 버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이 자신의 음악을 사랑한다면 이 일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 돈을 빨리 모아서 자기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획사를 차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선택한다. 이 방법도 현실성이 거의 없다. 어떤 현실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는 동안 그 일에 의해서 음악은 날아가 버린다. 




 현재 일기도 쓰지 않는 젊은 여성이 아이를 키우고 나서 나중에 소설을 쓰겠다는 말이나 동네 뒷산에도 가지 않는 남성이 돈을 모아서 나중에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꿈도 거의 실현불가능하다. 꿈은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의 욕망이 향하는 일이 하루하루 쌓여서 만나 나가는 미래이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면 세상도 한 걸음 다가온다.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나의 꿈을 실현할 안정된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고 현실에서 해나가는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뮤지션이다. 아름다운 청년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될까봐 결혼도 안할 정도로 일생의 유일한 의미와 목표는 문학창작에 있었지만 생계를 위해서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썼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 기우의 아르바이트인 과외선생 설정이 대학 때 중학교 남학생한테 수학을 가르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철문을 삐그덕 열면 정원이 나오는 고급 복층 빌라였고, 2층에 사우나도 있고 신기했던 경험이었고, 처음 사모님 면담 때 느낌이나 대리석 바닥의 감촉, 넓고 싸한 적막감이 참고가 됐다고 한다.

 미국의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한창 열심히 작곡을 할 때도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삿짐도 나르고 배관일도 했다. 미술 평론가 로버트 휴즈가 자기 집 식기 세척기를 고치고 있는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아방가르드 작곡가인 걸 보고 놀랐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리고 그는 마흔 두 살 까지 택시 운전을 했다. 그의 음악은 정반대의 것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진보의 세계, 즉 인류가 꾸준히 걸어온 길이라는 평을 받는데, 이는 자신의 인생역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홍당무』를 쓴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집안에서는 그를 파리의 사범학교에 보내려 하였으나, 철도 회사, 창고 회사 등에서 낮은 급료를 받으며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파리에 가서 상징주의 시인들과 사귀면서 5년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시와 소설을 썼다. 

 주류에서 벗어난 별종으로 적이 많았던 철학자 스피노자는 좌절하지 않고 오로지 기쁨과 전망만을 믿으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제3의 눈인 안경 렌즈를 세공하는 일로 생계를 꾸리면서 외롭고 조용히 자신의 연구를 이어갔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업종의 아르바이트를 했던 배우나 뮤지션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배달 아르바이트, 편의점, 카페, 패스트푸드점, 음식점, 피팅 모델, 구청 서류 정리, 서빙, 전단지 돌리기, 의자 나르기 일용직, 주유소… 알바왕, 아르바이트 인생이라 불리울 만큼 다양한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한 유명인들은 하나 같이 그 일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중요한 일이었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법륜 스님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자 수학 과외를 4년간 하셨다. 법륜스님 말씀을 들어보자.

“좋은 것 찾는다고 현재를 무시하고 미래를 찾는다면 허황되기 쉬워. 그렇다고 현재의 밥벌이만 생각하면 미래의 희망이 없어. 그래서 우리는 이상을 쫓을거냐. 현실을 중요시할거냐 사람들이 많이 묻는데, 모순관계에 있는 게 아니야. 두 발은 현실에 두고 두 눈은 이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나가야 한다. 

 사람이라고 생긴 것은 밥을 먹어야 되죠? 현실적으로 최소한도의 생활비가 필요하죠? 이 현실에 서 있되, 자기 하고 싶은 걸 보면 되요. 자기 하고 싶은걸 하면서 밥 먹을 수 있으면 좋고. 예를 들어, 현실에서는 돈을 많이 주지만 이상과는 달라. 그렇다고 꼭 이상만 찾을 필요는 없고 차근차근 찾으면 되는 겁니다. 

 반대로 현실이 어렵단 말이에요. 어렵다고 타협을 하면 안 되겠죠? 힘들다고 목탁치고 제 지내면 기성불교하고 똑같아지죠. 그럼 어떻게 현상유지를 할 거냐. 4년 아르바이트를 했단 말이에요. 내가 옛날에 수학 선생을 했기 때문에 돈 받으면서 생활 유지를 했던 거예요. 

 밥벌이는 수학 선생을 하고, 포교를 겸하다가 시간이 지나 신도가 어느 정도 생겼을 때쯤에 선생을 그만둔 거예요. 

 지금은 절이 아닌 강당에서 플랜카드만 달아놔도 사람들이 있잖아요? 옛날에는 어림도 없었어요. 다섯 명도 안 왔어요. 그런 게 20년 정도 쌓이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공짜로 먹으려고 하면 안돼요.“


 불가의 용어로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가듯이 모든 만남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어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도, 일도, 깨달음도…. 유형 무형의 일체의 생성과 소멸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리 조급해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을 수 있고, 여여한 마음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오직 모를 뿐’인 세상을 ‘오직 할 뿐’인 자세로 건너가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 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