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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14. 2019

들뢰즈의 고구마


 현대 철학자들 중 꿈의 기능을 무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꿈의 역할과 신비는 결코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꿈은 의존해서도 안 되지만 무시해서도 안 되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지혜의 땅인 것이다.

2세기 꿈 학자, 아르테미도로스에 의하면 꿈은 크게 강박몽과 예지몽이 있다.

 강박몽은 현실의 문제가 무의식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우리의 감정 가운데 일부가 자연스럽게 영혼의 움직임을 따르며, 영혼에 자리를 잡아 꿈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게 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이미지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이 바탕이 되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족함과 과도함, 두려움과 희망에 따라 그것이 의식적인 검열이 없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더 과장되게 나타남으로써 감정을 증폭시키고 의식에서 반영하도록 길을 제시해 준다.

 예지몽은 미래에 나타날 (현실화 될) 꿈으로 옛 사람들은 이를 '신이 보낸 꿈'이라고 했다. 

 아르테미도로스는 예지몽을 통해 영혼이 우리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조심하라. 너의 한도 내에서, 또 내가 가르쳐준 대로!" 

 중요한 사실은 신이 보내는 예지몽은 '근심이 없는 이'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근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반영된 '강박몽'에 가려져 더 심층에 있는 '예지몽'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지점을 현실적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요구에 불려다닌다든가,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있다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던 많은 문제들이 한 줄기로 정리되고 있고, 그 중심에는 철학적인 개념들이 있다. 베르그송을 읽다가 언급된 스피노자를 읽고, 스피노자와 관련된 질 들뢰즈를 읽었다. 수년 전에도 몇몇 키워드가 와 닿아서 들뢰즈 책을 사놓고 뒤적거리다가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때와는 다른 강렬함으로 읽혀진다.

 왜 철학을 공부하는지에 대한 나의 이유가 보다 선명해졌다. 철학의 개념들은 그야말로 내 삶을 받쳐주는 연장과도 같은 실용적인 도구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개념을 하나 알게 되는 것으로 기존에 알고 있었던 개념들을 단절하거나 연결해가면서 나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삶의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내가 발 딛고 있는 불안한 현실을 긍정하고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적 개념은 생각을 단단하게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고, 쉽게 휩쓸릴 수 있는 세상의 큰 물결과 부딪히는데 힘을 실어준다. 

눈만 뜨면 사람들은 세상에 쏟아져 나와 자신이 판매하는 물건이 좋고, 자신의 가치가 옳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생존과 사회적 연대감 등 자신의 욕구를 기준으로 그것들을 선택해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교류하며 사회를 지탱하고 움직인다.


 '리좀(ryizome)'은 지금의 내 삶을 긍정하도록 떠받쳐주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등장했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공저 『천개의 고원』에서 소개되는 ‘리좀’은 다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역동성을 의미한다. 고구마의 뿌리줄기를 생각하면 쉽다. 고구마의 뿌리는 나무의 뿌리와 다르다. 나무의 뿌리는 하나의 굵은 중심에서 파생되어 나오며, 파생된 잔가지들은 다시 중심으로 향하는 이른바 특권중심적 구조다. 반면에 고구마의 뿌리는 하나의 중심 뿌리가 없이 다 방향으로 선이 얽혀있다. 고구마가 자라는 대로 밭의 지형을 바꾸고, 고구마가 땅에 닿은 접촉면이 뿌리가 자라는 곳이 된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가는 생명력이다. 『천개의 고원』에서는 수목적으로가 아니라 리좀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나무에서 리좀으로- 1980년대 이후 현대 사상의 지침이된 이 슬로건은 현재 내 삶의 모토가 되고 있다.

 플랜A로 안되면 B,C,D... 가 얼마든지 가능한 유동적인 삶이다. 

 경쟁하고 비교하고 따라잡고 앞지르고 이기는 방식이 아니라 달아나고 또 달아나는 것이다. 올바른 관념을 가지고 올바른 신념을 유지하고 실천해서 끝내 성공하고야 마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짦은 관념을 가지고 실험하는 방식이다. 

 규범적이지 않음, 다른 식의 인생으로 생성, 변화하기

 고생하면서도 밝음을 유지하며 타인에게 친절한 마음 씀 따위는 포기하는 것, 도주하고 또 도주하여 즐거운 사람으로 살아남기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단순하게 죽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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