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은 공간이 아닌 영혼의 상태
보르헤스는 되풀이하여 꾸는 꿈으로 미로, 글, 거울이라는 세 개의 악몽을 말했다. 길을 찾을 수 없는 반복되는 미로와 자신이 시력을 잃고 나서 글자들이 살아 움직여서 글을 읽을 수 없는 꿈을 꾸는데, 글자들이 사라져 버려 글자 없는 책이 되고, 친구들의 얼굴이 없어지고, 아무것도 없는 거울이 되는 반복이 보르헤스의 악몽이라고 한다. 악몽의 느낌이 이미지로 제공되는 데에는 그 사람의 가장 내밀한 두려움과 공포의 경험이 있을 것이고 보르헤스에게 그것은 시력을 잃는 일에 닿아있다. 보르헤스의 악몽을 생각하다가 나에게 반복되는 세 개의 악몽을 기억해 냈다. 들러붙는 것, 구멍 뚫린 것, 뒤죽박죽 섞이는 것.
들러붙는 것은 집착의 이미지다. 엿이 이에 들러붙어서 이가 빠지고, 아스팔트의 덜 마른 콜타르가 신발 밑창에 들러붙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기억나는 최초의 꿈은 부모님이 언니의 장기 입원 때문에 나를 친척인지 이웃인지 확실치 않은 아주머니에게 맡겨놓고 대문을 나서는 장면이다. 가족들이 사라진 하늘색 나무 대문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아주머니의 강한 손아귀에 붙들려서 허공에서 발버둥 치면서 울부짖는 처절한 내 모습이 최초의 기억이다. 이 기억은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의 상으로 변화하면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게 끈질기게 붙들어 매었다.
성체가 된 서커스의 코끼리가 아기 때 잡혀 왔을 때 발에 채워진 족쇄를 여전히 무겁게 여기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발만 들어 올리면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는지 모른 채 익숙해진 무기력 속에서 일생을 보낸다. 무언가에게 붙들려 있는 것 같은 태초의 힘에 사로잡혀서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지금 여기에서의 힘을 망각한다. 적절한 순간에 깨끗하게 떨어져 나가야 할 물질이 끈적하게 들러붙는 이미지의 불쾌함은 떼어내고 싶고, 멀리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게 한다. 집착의 감정은 과도하게 원하는 바에 들러붙음으로써 원하는 바로부터 떨쳐내어 지고, 버림받고, 밀려나게 한다.
구멍 뚫린 것. 유년의 이미지가 집결되어 있는 학교 앞 보물섬 문방구에서 자연 시간 준비물로 물체 주머니를 샀다. 파란색 작은 주머니 안에 있는 물건들을 쏟아붓자 자석, 철가루, 유리구슬, 고무풍선, 꼬마전구, 전선, 돋보기, 스포이트, 쇠막대, 모터 등등 아이의 눈에는 그저 신기한 가능성의 세계가 펼쳐졌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들여서 분 풍선의 끝을 묶으려고 하는데 풍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풍선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내 공기가 빠져나가고 쭈그러들었다. 친구들은 누가 더 크게 불었나 비교하면서 신나 있었고, 쭈그러진 내 풍선을 보고 웃었다. 꼬마전구를 직렬과 병렬로 연결하는 빛의 순간이었다. 귀여운 꼬마전구에 불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실망스럽게도 내 꼬마전구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책에 나온 대로 여러 번 했는데도. 운동장에 나가 돋보기로 태양 빛을 모아서 먹지를 태우는 실험을 하는데 내 물체 주머니에는 먹지가 들어있지 않아서 친구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참 이상하고 힘든 하루였다. 나중에 밝혀진바 이 모든 불운은 문방구 아저씨가 불량 난 재료만 모아 둔 물체 주머니를 아주머니가 모르고 나에게 판 것이었다. 그날의 꼬마전구 실험의 성공으로 에디슨을 꿈꾸는 아이가 탄생했을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실수의 개입으로 실패의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불량 물체 주머니를 나에게 판 문방구 아저씨, 아주머니를 원망할 수도 없고.
그래도 보물섬 문방구를 계속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혈액형별 성격을 적어 논 예쁜 수첩이나 바르면 손톱이 상하는 알 수 없는 성분의 매니큐어와 조악하게 반짝이는 플라스틱 액세서리들과 오색찬란하며 눈을 못 뜰만큼 시고 단 사탕들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고 그런 것들은 오직 보물섬 문방구에만 있었다.
뒤죽박죽 섞인 것, 햇볕에 바삭하게 말린 기분 좋은 빨래를 공들여서 개어 놓았다. 높이 쌓아 올린 옷들을 제때 옷장에 넣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옷들의 공든 탑이 무너진다. 옆에 있던 빨랫감들과 섞여 버린다. 뭐가 빨랫감인지 새 옷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된다. 모든 옷을 다시 빨아야 한다. 다시 빤 옷을 다시 햇볕에 말리고 개어서 높이 쌓는다.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옷이 더 높은 옷의 탑을 만든다. 균형을 잃은 옷이 다시 무너진다. 잠에서 깨지 않는 한 이 실패가 반복된다.
들러붙고, 구멍 뚫리고, 뒤죽박죽 섞여 버리는 혼돈의 상황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는데 장애가 되고, 그것이 무한반복 되면 절망적 이어 진다. 악몽은 핵심 경험과 감정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지만 공통적인 속성은 무한반복이라는 점이다. 한두 번 꾸고 말면 그런 일도 있구나. 하고 털어내면 되지만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은 희망을 잃게 하고 나아감을 회의적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몽의 절망 앞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꿈은 창조라는 사실이다.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이 끝없이 만들어 내는 고착된 감정의 이미지가 꿈이다.
악몽은 공포의 감정을 일으킨다. 모든 공포는 박탈과 결핍 그로 인한 소멸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박탈과 결핍의 환상은 이해받고자 애쓸수록 더 들러붙고 구멍은 더 커지고 혼돈은 끝나지 않는다. 이 악몽은 누군가에 말하고 이해받고자 하는 끈질긴 자기 연민을 멈출 때 힘을 잃는다. 탄생 자체가 박탈의 경험이고, 누구나 고통체를 가지고 있으며, 고통을 싫어한다. 유독 나의 고통에 과도하게 집착할 때 고개를 드는 것이 불행의 본성이다. 보르헤스는 모든 불행은 작가에게 주어진 도구이며, 우리의 과제는 모든 추억과 정서와 심지어 슬픈 기억까지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르헤스가 거장인 것은 시력을 잃어서도 악몽을 꾸어서도 아니고, 그 어마어마한 박탈과 결핍과 악몽의 무한반복 속에서 끝없는 아름다움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악몽은 의식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의 두려움에 의해 끝없이 생겨나고 전개되는 뿌리 깊은 감정임을 의식하는 것이다.
악몽이 창조라면 선몽도 창조할 수 있다. 선몽은 영원히 반복되는 악몽보다 더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 그렇기에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깨끗하고 반짝반짝하고 구멍 없이 매끈한 완전무결함, 완벽한 끝은 항상 아름다움을 움켜쥐기 직전에 깨고 마는 아쉬움을 동반한다. 그래서 그 역시 끝없는 희망을 갖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회의를 갖게 한다.
꿈이란, 삶이란, 사랑이란 항상 일부일 수밖에 없다, 과정일 수밖에 없다. 무한 반복되는 악몽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무한반복의 미로 속을 꿋꿋이 헤매 다니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이다. 일부가 전체고, 과정이 결과고, 실망할 것도 실패랄 것도 없다는 것, 악몽을 꿨든 선몽을 꿨든 펼쳐진 삶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이 성공이고 승리다.
보르헤스는 천국과 지옥을 공간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사람들이 단테의 신곡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천국과 지옥은 공간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라고 말했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천국에 간다면 천국의 도서관의 사서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인상 깊게 간직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나의 천국의 이미지도 도서관이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도서관은 천국만이 아니라 지옥의 이미지도 도서관이다.
내 지옥의 도서관에는 삼국지 전집, 제인 에어, 국어대사전, 세계문학전집, 피아노 교본, 바이올린 교본, 뜨개질 교본, 영어, 일본어, 수학, 물리 교과서, 참고서 등등이 꽂혀있다. 삼국지는 영재였던 사촌 오빠가 물려준 세로 활자본에 한자까지 섞여 있는 전집이었는데 오빠가 놀러 올 때마다 읽었냐고 물어보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몰래 버렸고, 그 이후로도 삼국지를 볼 때마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과 읽기 싫다는 저항이 공존하면서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 책이다.
제인 에어를 안 읽어놓고 줄거리만 보고는 읽은척하고 독후감을 써낸 일, 결제할 카드 대금이 부족해서 책들을 팔아먹은 일, 집에 화재가 나서 선물 받고 한 번도 안 읽은 세계문학전집이 잿더미로 변한 일, 글쓰기 공모전에서 부상으로 받은 두꺼운 국어대사전을 밟고 올라서서 물건을 꺼내는 사다리 용도로 사용한 일, 몇 번이나 배우기를 시도했으면서도 제대로 치지 못했던 피아노 교본, 바이올린 교본, 뜨개질 교본을 비롯한 많은 교재들을 절망적으로 생각하게 된 일…….
나의 지옥은 큰 쇠집게로 혀를 자른다든가. 뜨거운 유황 불길이 타오르는 가마 속에 던져진다든가, 강풍에 몸이 갈기갈기 찢긴다든가, 굴러오는 큰 바위를 피해 영원히 도망 다닌다든가……, 언젠가 인상 깊게 본 이미지 때문에 굳어진 형벌의 공간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어야 할 시기에 읽지 않고 읽지 못했던 일에 대한 회한과 그로 인해 인생이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기 비하와 자기 연민의 한탄이 가득하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다른 생각이 눈앞을 흐리게 만들어서 책 가장자리를 빨리 넘기게 되어 책을 덮어도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읽지 않은 상태와 똑같아지는 것이 지옥의 도서관의 비극이다.
내 지옥의 도서관에는 덩치와 이빨이 크고 털이 새카만 원숭이가 있다. 이 원숭이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으로, 또는 화가 난 모습으로 ‘반드시 이렇게 해야 된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설득하느라 바쁘다. 그러다 그 사람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앉아서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뭔가를 먹기에 바쁘다. 다시 사람이 지나가면 또다시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말하기에 바쁘다. 자기의 힘을 잘 모르고 사소한 일에 힘을 다 써 버린다. 너무 많이 먹고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느라 끊임없이 말하고 늘 바쁘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할 힘이 약하다.
지옥의 도서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글자 한 글자 읽는 것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는 것, 집중하는 것, 쌓여있는 책들의 탑을 바라보는 탄식의 한숨을 지금 여기, 내 앞에 것에 집중하는 차분한 호흡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호텔에서 일하는 동안, 걸어서 5분 거리에 해변 도서관이 있었다. 처음에 그곳을 알게 되었을 때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안타까울 정도로 좋은 공간이었다. 해변 도서관은 1층 해양 파출소 위 2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내가 갈 때마다 사람이 아예 없거나 한두 명이 있는 정도였다. 내가 늘 지나다니면서도 몰랐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 도서관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좋은 공간이 텅텅 비어있을 리가 없었다.
건물 외벽이 둥근 형태로 지어져 있었고, 둥근 벽을 따라 좁은 원목 테이블이 길게 이어져 있는 모습이 근사한 카페 같았다. 그 공간의 압도적인 장점은 바로 그 자리에 앉으면 확 트인 바다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공짜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서 책도 읽을 수 있는 데다 무려 바다 전망이라니 내가 상상하는 천국의 도서관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도서관치고 넓지는 않았지만 큰 카페 정도 되었고, 사람들이 별로 이용하지 않는 만큼 책 수도 많지 않았다.
쉬는 날은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갔지만, 호텔에서 가까운 해변 도서관을 발견한 이후로 평일도 아침저녁으로 틈틈이 이곳을 들렀다. 가끔 재미 삼아 ‘프랭크’를 검색했고, 점점 프랭크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그저 호기심이 가는 제목과 작가의 책을 읽었다. 그때는 그 시간과 공간의 앞뒤로 청소 일에 대한 잔상이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좋음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는데,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청소 일에 대한 잔상을 걷어내며 책을 집어 들었던 그 순간이 눈부시게 기억된다.
호텔 헤르메스를 그만둔 후에 다시 해변 도서관을 찾았을 때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이용을 안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나중에 친구들을 만나서 그 해변 도서관에 대해서 말하면 그곳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내가 일하던 시기 전후로 해서 짧은 기간 동안 운영했던 모양이었다. 그 해변 도서관을 떠올릴 때마다 꼭 나만을 위해 그때 거기에 있었던 환상의 공간이 아니었나? 기분 좋은 공상을 하게 되고, 그 공상은 내 천국의 도서관의 몽상으로 이어지곤 한다.
내 천국의 도서관에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새벽마다 일어나서 외웠던 그림 형제 이야기책, 어려워서 읽지 못하면서도 가지고 있던 헤겔, 양자물리학, 뇌과학, 신학 책들이 끝도 없이 질서 정연하게 꽂혀있다. 내 천국의 도서관에는 멋진 정원이 있다. 초록의 잔디로 뒤덮인 정원에는 띄엄띄엄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안네 프랑크, 빅터 프랭클, 야콥 폰 윅스킬, 미하엘 엔데, 가스통 바슐라르……. 영혼이 춥던 시절, 마음에 봄을 가져다준 둔 작가들이다. 동상의 아래에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밝혀준 명언이 새겨져 있다.
‘이 모든 것을 잊기 위한 오직 한 가지 방법, 그것은 공부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답니다.’
-안네 프랑크
‘의미를 발견한 위대한 인물들에게만 매달리지 말고,
의미를 추구했으나 끝내 실패한 사람들에게도 주의를 돌리라.
이 사람들은 당신이 품고 있던 것과 똑같은 의문으로 고통당했지만
결국 그것을 하나의 철학으로 만들어 냈다.’
-빅터 프랭클
‘환경의 빈약함은 행동의 확실성의 조건이 되며,
확실성은 풍부함보다 중요하다.’
-야콥 폰 윅스킬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
-미하엘 엔데
‘사람은 살균된 세계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는 법이지요.
그 세계에 생명을 이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미생물들을 들끓게 해야 했습니다.
상상력을 회복시키고, 시를 발견해야 했던 거지요.’
-가스통 바슐라르
내 천국의 도서관에는 먹물을 좋아하는 원숭이가 있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종이의 구수한 냄새를 좋아한다.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책을 읽으며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말과 행동이 차분하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힘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최후 심판의 날 아침, 위대한 정복자, 법률가, 정치가들이 그들의 보답 -보석으로 꾸민 관, 월계관, 불멸의 대리석에 영원히 새겨진 이름 등-을 받으러 왔을 때 신은 우리가 옆구리에 책을 끼고 오는 것을 보시고
사도 베드로에게 얼굴을 돌리고 선망의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하시겠지요. 자, 이 사람들은 보답이 필요 없어. 그들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사람들은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나는 더 이상 짚신벌레처럼 초조하게 도망치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무 위에서 책을 읽는 나무늘보처럼 느긋하고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