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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12. 2023

삶을 바칠 쓸데없는 명분 찾기


확실한 목표


 "이탈리아 남자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은 여자예요. 이탈리아 남자들은 대부분 돈을 버는 이유도, 좋은 물건을 사는 이유도, 운동을 하는 이유도 모두 여자를 사귀기 위해서라는 목표가 분명해요.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문학공부를 할 때 필수적으로 다루는 단테, 페트라르카, 레오파르트와 같은 시인, 작가들이 모두 여자가 있었어요.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가, 페트라르카에게는 라우라가, 레오파르티에게는 실비아가 있었고, 모두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문학의 소재로 해서 평생 그 한 사람에 대해서만 썼어요. 그래서 이탈리아 남자들은 여자를 보면 '저 여자 너무 아름답다', '실크 같은 피부', '바다 같은 눈동자'와 같은 멘트가 저절로 나오는 것 같아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씨가 한 유튜브 채널에서 한 말이다. 우스개 이야기 같지만 생각해 볼수록 철학적이고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문화적인 토양이나 교육의 효과가 사람, 한 사람에게, 나아가서는 민족의 성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성을 사랑하는 문학가 조상들 덕분에 이탈리아 남자들의 삶의 목표가 확실해졌다는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피부, 아비투스


 아비투스(HABITUS)는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으로 아우라처럼 인간을 감싸고 있는 일종의 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식습관을 비롯한 생활 방식, 질서가 생산, 지각, 경험되는 제2의 본성이라고 한다. 아비투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짧게는 20-30년, 길게는 수세대간에 걸쳐서 형성돼도 내려온 경험과 문화가 축적된 것으로 쉽게 바꾸거나 극복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비투스 개념을 접하면서 유행처럼 사용하고 있는 흙수저, 금수저, 육각형 인간과 같은 단어도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제2의 본성, 아비투스를 말하는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도 쉽게 작심삼일에 이르게 되고, 끊임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아비투스의 끈질긴 성질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비투스와 같은 어려운 개념을 왜 굳이 알아야 하나? 우리를 둘러싼 이런 보이지 않는 습성의 막의 끈질긴 성질을 의식하는 것으로 반복의 무력함을 극복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쓸데없는 명분 찾기


 수년 전에 브런치 메인에 실린 글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다. 자신은 작가 소개란에 수상 경력한 줄 적는 것도 괜히 민망해서 적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많이도, 잘도 어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을 당시에는 내 인생에 글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끄집어내서 길고 긴 프로필을 써놓은 상태였기에 그 글을 읽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내 프로필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프로필 소개란을 비워뒀는데, 필요에 따라 다시 편집해서 재표출할 생각이다. 


 세계에서 보이는 텍스트나 이미지, 인상들은 내 안의 상태나 감정에 따라서 같은 것이라도 다르게 느껴진다. 당시에 내가 읽었던 그 글을 쓴 분도 그때의 자신의 마음 상태가 반영되어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프로필이 과도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소개란을 비워둔 현재의 나 같은 사람도, 한 줄만 써놓은 사람도, 온갖 사소한 경력을 죄다 적어놓은 당시의 나 같은 사람도 모두 그러한 표출 이면의 자기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별생각 없이 썼든 절박한 마음으로 썼든. 


 누군가에게 쓸데없이 보일지라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명분을 찾아내서 삶을 이어간다. 그러기에 누군가 내가 이해 못 할 절박함으로 과도한 표출을 하는 것에 대해, 또는 침묵으로 수동적인 공격을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할 수는 있지만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보아주었으면 한다. 그런 '봐내는 능력'이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능성을 시도해 볼 용기를 낼 수 있고 자신의 과도함을 통제할 수 있는 힘도 동시에 기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바칠 쓸데없는 명분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조차 없다면 왜 굳이 숨을 쉬는가?
돌아보면, 일단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보고 눈의 색깔을 알아보고 공기를 맛보고 흙의 냄새를 맡고 가장 청정한 지하수와 가장 더러운 우물물을 마셔본 다음에, 우리가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말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

                (세한 카루나틸라카(Shehan Karunatilaka), <말리의 일곱 개의 달> 5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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