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적인 삶의 암호로서의 이미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세 가지 키워드, 꿈. 신화. 예술
의식은 깨어있을 때의 정신이고, 무의식은 잠들어 있는 정신, 즉 우리 안에 있지만 의식화되지 않아서 스스로도 모르는 정신이다. 보이지 않는 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시각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미지들로 빙산, 나무, 거미줄을 떠올려보았다.
빙산 이미지는 무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빙산은 수면 위에 보이는 부분보다 수면 아래에 잠겨서 수면 위의 빙산을 떠 받치고 있는 영역이 훨씬 크다. 우리의 의식, 무의식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뇌에 대해서 말할 때, 사용하는 빛의 영역보다 사용하지 않는 어둠의 영역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나무 이미지도 의식, 무의식을 시각화하는데 좋은 자료로 널리 활용된다. 땅 위의 나무 형상은 의식을, 땅 아래의 뿌리는 무의식을 상징한다. 오래되고 큰 나무일수록 뿌리가 거대하다. 나무의 뿌리들끼리 얽히고설켜서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는 칼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을 연상시킨다. 가뭄에 수분을 서로 전달하고, 홍수에 흙이 씻겨나가도 쓰러지지 않고 서로 의지해서 버텨낼 수 있는 이유가 하늘을 향해서 자라는 나뭇가지는 독립적이지만, 어두운 땅 속에서 뿌리끼리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엘리아데는 <신화. 꿈. 신비> 서문에서 나무 이미지의 상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초기 사회에서 어떤 나무가 '세상의 나무'라고 지칭되고 성스러움으로 생각되었다면 그러한 믿음을 가지게 했던 종교적 경험 덕분에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우주의 형이상학적 이해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왜냐하면 세상의 나무라는 상징은 특별한 대상이 우주 전체를 의미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적 경험은 영적 행위로 변환되고 '더 활발하게 된다.' 세상의 나무라는 종교적 상징 덕분에 인간은 우주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13쪽)
'이 이미지들이 심층적인 삶의 암호를 구성한다. 무의식에서 전개되는 드라마는 긍정적 해결책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꿈속의 경험이나 상상적 경험을 해독하여 얻어진 의미는 종교적 경험의 틀에서 나무의 상징을 밝히는 효력과 유사하다.' (14쪽)
'꿈에 등장하는 나무 이미지는 개인적 상황으로부터 인간을 부분적으로 구원한 것이다. 상징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나무 이미지는 우주를 계시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인간을 정령의 국면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 (14쪽)
이슬이 맺혀있는 거미줄은 그 모습 자체로 신비스럽고 아름답다. '화엄경'에 나오는 인드라망을 떠오르게 한다. 인드라망의 원래 뜻은 불교 우주관에 나타나 있는 무수한 하늘나라 가운데 제석천이라는 궁전에 드리워진 그물을 말한다고 한다. 모든 것에 연관이 있다는 연기법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비유이다. 거미가 만들어내는 거미줄의 연결도 놀랍고, 거기에 맺힌 하나하나의 물방울도 놀라운데, 불교의 연기법에서는 이 물방울 하나하나에 비친 각자 다른 세계의 연결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옷깃을 한번 스치는 것도 수백 겁의 인연이라고 하는 것 같다.
빙산, 나무, 거미줄의 이미지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처럼 우리가 모르고 있는, 활용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정신의 영역이 방대하고 큰 잠재력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게 된다. 이 예감, 예지, 느낌, 감정은 실제로 유용하게 작용해서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 실행력을 불러온다.
내 세계의 나무를 상상해 보자. 일명 나무 명상이다. 그림으로 그리는 것도 좋다. 짙고 푸른 녹음으로 우거진 커다란 나무, 뿌리가 깊고 넓게 펼쳐진 나무, 붉은 열매가 다닥다닥 많이도 열린 나무, 그 속에 새들이 날아들고, 벌레가 들끓고, 다람쥐가 도토리를 가지고 드나들고, 나무늘보가 낮잠을 자는 나무를 가졌는가? 생명체가 보이지 않는 앙상하고 볼품없는 나무를 가졌는가?
내 세계의 빙산, 내 세계의 인드라망은 어떤 모습인가? 끝없이 뻗어나가는 충만한 이미지인가? 그렇게 만들자.
장르 문학이 유행하면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내 존재가 살아갈 나의 세계를 설계하고 세계관을 만들면 그곳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무의식을 활성화해서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이기 때문이고, 그것의 힘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방대하다는 것이고, 무의식을 의식화해서 사용하지 않을 경우, 무의식이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튀어나와 의식적인 삶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다듬어지지 않은 식재료와 같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흙이 묻은 채로 식탁 위에 올릴 수 없듯이 좋은 재료를 발견하면 그것을 적당하게 조리해야 하는데, 그것이 의식이 해야 할 일이다.
무의식을 알아차리고 활용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로 명상, 참선, 기도 등의 종교 활동, 신화에 대해 알고 공부하기, 예술 활동 그리고 꿈작업을 들 수 있다. 특히 *이 글에서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꿈, 신화, 예술을 든 것은 필자가 꿈작업을 하면서 꿈의 집단무의식적 원형의 이미지와 상징의 의미를 채취하는데 신화와 예술이 유용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점과 여기에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이론적 배경이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화에서 '무의식의 이미지' 부분이 길어짐에 따라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세 가지 키워드. 꿈, 신화, 예술'은 다음 화에서 다룰 예정이다.)
프로이트의 천재적인 발견과 그 토대 위에서 형성된 심층심리학으로 우리는 꿈의 세계에서 만나는 이미지들이 상징, 원형 그리고 신화를 이루는 사건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심리학자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신화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이 집단무의식의 내용들과 역동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신화는 세계의 창조와 존재를 말해준다. 실재를 떠받치는 근거를 제공한다.
12월 12일. 화요일에 8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세 가지 키워드, 꿈, 신화, 예술>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