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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Feb 09. 2024

독이 되는 말 힘이 되는 말


 건강 관련 글인데 소재가 말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하거나 하지 못했을 때, 독이 되거나 힘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독이 되거나 힘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단지 순간적인 기분을 좌우하는 것을 넘어서 꽤 오랜 시간을 침울하게, 또는 활기차게 만들어주며, 길게는 일생에 걸쳐 마음에 가시처럼 남거나 보석처럼 빛나는 재산이 되기도 한다. 고로 말이라는 것은 건강에 유익하게도, 해악으로도 작용하는 신기한 것이다.


 일주일 가량, 늦은 오후 집중력이 떨어질 무렵에 동네에 있는 24시 무인카페에서 두어 시간 책을 읽었다. 

설이 다가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고, 특히 주목하게 된 일이 있었다. 일주일 간 거의 매일 있었던 신기한 일인데, 같은 사람들도 아니고, 매일 마다 다른 중년 여성 두 명이 격앙된 어조로 그 자리에 없는 특정 인물에 대한 억울함과 원망을 토로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좁은 공간이라 배경 음악이 흐르고 있음에도 대화하는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시어머니를 비롯해서 남편, 시누이, 시동생, 올케, 동서 등 가족 구성원과 있었던 일화 중심의 대화들은 읽던 책 보다 더 흥미진진해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책에서 시선을 떼어 창밖을 바라보고는 사색에 잠긴 척 하면서 귀동냥을 하게 되었다. 그저 한두 마디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것에 대한 넋두리 정도가 아니라, 한평생을 참고 지냈다거나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병을 얻은 놀라운 이야기 일색이었다. 타인이 자신에게 한 기분 나쁜 말을 오랫동안 품고 지낸 결과, 말이 병이 되었다는 한 여성의 말에 귀가 쫑긋했다.


 카페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다가 얼마 전에 들었던 친구의 사연이 연결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지하철 출구 앞에서 약속을 했는데,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안 본 지 1년도 안된 사이에 검던 머리가 백발이 되어서 나타난 것이었다.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긴 했지만, 그토록 큰 변화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고, 친구의 사연인즉 이러했다.


 자신이 일생에 걸쳐 모든 것으로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어느 날, 듣게 된 말에 대한 이야기였다.

 친구를 한 순간 백발로 만든 그 말은 바로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라는 모욕적인 평가였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두 달 동안 그 말이 머리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았고, 충격과 비탄에 빠져 지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하룻밤 만에 백발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친구는 말하는 도중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를 여러 번 반복하며 아직도 그 말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기분이 많이 나빴겠다.'는 공감의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당사자가 아닌 나에게도 충격이 전해지는 말이었다. 마음속으로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한평생을 보고 지낸 사람에게 맥락이야 어땠든 간에, 부정적인 의미로, 면전에 대고,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그 말 말고는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말의 강도가 워낙 강해서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를 나에게 적용시켜 보았다. 나는 어땠을까? 기분이 많이 나쁠 것 같다. 그래도 두 달 까지 그 말에 휘둘리지 않고, 백발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 말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어떻게 마음을 잡아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떠오른 생각은 이렇다.


 '그래, 나는 앞과 뒤가 다른 사람 맞아. 그 사람도 앞과 뒤가 다르고. 사람은 모두 앞과 뒤가 다르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무런 경계도,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갓난아기겠지. 앞과 뒤가 달라서 이렇게 견디면서 살고있는게지.'


 사람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을 움직이는 말이 몸에 닿으면 그 말이 독처럼 퍼져서 병에 이를 수도 있고, 꿀처럼 달고 향기로운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리운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이혼율이 가장 높은 때도 바로 명절 후라고 한다.

 말을 신중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나에게 해로운 말을 떨쳐낼 수 있는 기술도 때때로 필요하다.

  



연재 중인 브런치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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