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안네의 일기
집 근처에 있는 24시 무인카페에 자주 가곤 한다.
주로 아침 일찍 가고, 집중이 안될 때는 오후에도 가고, 가끔 저녁에 가기도 한다.
아침이 제일 좋다. 대체로 조용하고 사람이 없고, 늘 같은 시간에 오는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안정적인 분위기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아침의 생산성이 제일 높다. 생각 정리도 잘 되고 무엇을 읽어도 머릿속에 잘 들어온다.
아침이라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 아침의 선도 높은 내가 콤비네이션을 이루며 걸림 없이 쭉 달리는 느낌이다.
오후에는 변수가 많다. 갈 때마다 다른 손님들이 있고, 오후의 활력으로 커진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침입당한 집중력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굴복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약간의 보복성 엿듣기 악취미가 발동을 한다.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을 하는 모습으로 위장하고 들려오는 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 교육 이야기, 남편(아내) 이야기, 시어머니(장모님) 이야기, 직장 상사나 동료 이야기,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그 자리에 없는 타자가 대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칭찬이나 고마웠던 이야기 보다 불만이나 원망, 뒷담화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라도 털고 해소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고, 말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없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나 이웃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오래전에 내 모습도 생각이 난다. 직장 상사 뒷담화를 너무 하고 싶어서 참다 참다가 마음 맞는 동료와 만나서 몇 시간이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욕을 하고 나서 열이 나서 약을 사 먹은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럴 사람도 없고 그런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없고 소모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를 삶의 한 부분으로 들여놓은 것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일로 밥벌이를 하게 되는 것이 현재의 목표이고 꿈이긴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글쓰기의 건강함을 삶의 중심에 두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그런 내 안목과 감각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안네의 일기는 내 인생의 책 중 한 권이다.
책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고전인 이 책은 나치 치하에서 탄압받던 유대계 어린이 안네 프랑크가 은신처에서의 생활을 일기장 키티에게 낱낱이 이야기한 일기 문학이다.
안네는 키티에게 말한다.
'나는 쓰고 싶어요. 아니, 그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남김없이 털어놓고 싶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편을 갖고 싶어 한다. 그 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같이 흥분해 주고 욕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이해해 주고 지지해 주기를 원한다.
냉혹한 진실은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없는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면 결핍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된다. 그래서 신앙이 있고, 글쓰기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 구멍이 난 이들은 끝없이 자신을 이해해 줄 단 한 명의 소울메이트를 찾아 헤매면서 아무리 애써도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게 될 때까지 헛된 노력을 되풀이할 뿐이다.
마음이 통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축복받은 일이다.
그럴 수 없을 때라면, 우리에게는 우리 각자의 키티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자.
안네가 말하지 않았던가. '종이는 인간보다 참을성이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