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 Mar 25. 2024

언어의 탈주


"엄마, 지난이 뭐야?"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하려던 아이가 물어본다.

"지난이라니? 지단? 재난?"

"아니, 지난. 아까 엄마가 나한테 화낼 때 한 말 있잖아. 지난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뿔싸!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을 잃고 화를 내며 막말을 쏟아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고 한다. 

아이가 궁금해했던 단어, 지난은 바로 지랄이었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같이 글쓰기 모임에서 공부하던 학인이 눈물로 고백한 사례로, 이름을 밝히지 않더라도 타인의 아픈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해 조금 갈등하기도 했다.

듣는 사람들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우리 각자도 다 그만한 미안함을 아이에게 가한 행적이 있었으므로 누구도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개적으로 스스로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동료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었고, 그는 스스로의 언어로부터 탈주함으로써 훨씬 더 성숙하고 좋은 엄마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일 테지만 육아는 그야말로 상상하는 무엇이든 그 이상이었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는 여자 아이고 말썽이란 것도 없었는데,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기본적인 생활을 도와주는 것조차 버거웠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만큼 미숙한 엄마였던 것이다. 

한동안 유아교육에 몸 담으면서 아이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잊혀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엄마와 유아 교사는 아이를 통해서 성장한다는 말이다. 

나름의 최선으로 아이를 키운다지만 연약하고 투명한 작은 아이에게 어쩔 수 없이 가하게 되는 크고 작은 폭력 앞에서 온갖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이를 통한 성장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싫어하고 떨면 내 아이도 그럴까 봐 안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용기를 내서 발표를 하고, 내가 게으름을 피우면 내 아이도 그럴까 봐 조금 더 부지런을 떨고, 내가 가진 것 중 최고의 것만 주고 싶어서 애쓰는 동안, 나의 부족함과 무력함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게 되는 이 모든 과정이 성장이었다고 생각한다.



비 오는 날 아침 등원을 할 때 아이에게 해주는 부모의 말들이 있다. 

미끄러지니 철로 된 부분을 밟지 말고, 우산을 켤 때 눈이 찔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는 부모가 있고, 비가 오니 달팽이와 지렁이가 많이 나와서 재미있겠다고 말해주는 부모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안전을 위해서 주의의 말이 필요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과도한 주의성 말은 아이에게 불안을 준다. 좀 미끄러지고 찔리기도 하면서 조심해야 하는 것들을 배운다. 



우리는 언어로 만든 옷을 입고 세상을 만난다. 

불안한 옷을 입고 세상에 한걸음 나아가면 불안한 세상이 한걸음 다가오고, 

편안한 옷을 입고 세상에 한걸음 나아가면 편안한 세상이 한걸음 다가온다. 

어렵고 복잡한 세상 같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 간단하다. 

내 마음이 편하면 이 세상도 편하다.

편한 마음은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불안의 언어로부터 탈주하여 평화의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연재 중인 브런치북입니다.


일요일과 목요일 -<길모퉁이 글쓰기 카페>

+ 화요일과 토요일 -<읽기의 천사>

+ 월요일과 금요일 -<건강할 결심>

+ 수요일과 토요일 -<오랜일기>

이전 18화 아침의 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