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톱모션 <다섯 개의 병>
이모가 제일 좋아!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젊은 시절, 아이를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던 내 생각을 완전히 전복시킨 첫 조카의 이름은 서현이다. 서현이가 아기였을 때, 막 아장아장 걸으며 겨우 알아들을까 말까 하는 소리로 사물을 말할 때, 엄마 아빠 중 누구를 먼저 말할까 가 온 가족의 초미의 관심사일 때, 처음으로 했던 말은 '이모', 바로 나였다! 나만 보면 이모, 이모 하면서 손을 이끌고 장난감 통 앞에 데려가서는 같이 놀자고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언니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서현이가 계속 이모를 찾는다고 해서 퇴근길 발걸음이 빨라지곤 했었다. 애인 보다 더 보고 싶은 사람이 생긴 건 처음이지 않았나 싶다. 늘 이모를 찾는 아이를 보며 언니도 '서현이는 참 특이하네. 어떻게 엄마보다 이모라는 말을 더 많이 할까?' 신기해했고, 조카의 사랑을 듬뿍 받는 나는 퇴근길에 서현이가 좋아하는 과자나 장난감을 사서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나를 안 좋아해도 무조건 이쁜 조카지만 특별히 내 이름을 많이 불러주고 찾아주니 더 이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엘모가 제일 좋아!
서현이가 엄마보다 더 많이 찾던 '이모'는 이모인 내가 아니라 바로 '엘모', 세서미 스트리트에 나오는 빨간 털을 뒤집어쓴 몬스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현이가 내 손을 잡아끌면서 했던 말은 '에(ㄹ)모'로 장난감 통에 든 수많은 놀잇감 중 제일 좋아하는 애착 인형, 엘모와 같이 놀자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악연 아닌 악연이 맺어진 엘모가 보일 때마다 아이를 별로 안 좋아했던 나를 회심하게 만들었던 첫 조카, 서현이를 생각하게 된다. 말도 안 통하는 작고 연약한 아이 한 사람의 등장으로 굳은 각질 같은 마음이 보들보들 해졌던 그때를 떠올린다. 무겁게 내려앉은 감정의 먼지를 털어내고 지금 이 순간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진다. 누군가의 손을 이끌고 같이 놀자 하고, 내가 아끼는 놀잇감을 보여주고 싶어 진다. 문구점에서 데려온 엘모 연필꽂이 하나로부터 시작된 스톱모션 영상을 연결하며 글을 마친다.
노는 게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