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라이너> 12화. 민태기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독후감
어려운 정신적 과제에 도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법을 배운다.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은 나라 잃고 떠도는 유대인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보다 '대학'을 먼저 설립한 것이다.
대체 아인슈타인이라는 과학자가 어떤 인물이길래, '상대성이론'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나라도 없는 터에 대학을 세우는지 궁금해했다. 그 이후 갑자기 아인슈타인에 조선 사회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다.
식민지가 된 조선에서 비로소 모두가 새로운 학문에 대한 교육, 즉 과학을 외쳤고, 해결책은 오로지 과학이었다. 나라를 뺏긴 이유가 서구의 과학기술에 무지했기 때문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과학은 말만이 아닌, 이념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기에, 과학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이 조선의 살길이라는 것은 명백했고,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과학을 배우자'라는 구호로 이어졌다.
이러한 요구는 3.1 운동을 거치며 더욱 절실해졌으며 1920년 한규설, 이상재 들의 주도로 설립된 '조선교육협회'로부터 본격화된다. 이들은 일반 대중의 교양 수준을 올리기 위해 교육 기회를 더 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교육기관의 확대가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교육을 통한 민족 화복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던 무렵, 나라 잃은 유대인 과학자가 이끈 대학 설립 소식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했다. 특히 '상대성이론'이 단순한 지식이나 과학에 머무른 게 아니라 세상을 움직일 정도로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시대의 비극으로 역사 속에 묻혀버린,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록이다.
오염된 이념으로 과거를 재단하기보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든, 그 흔적 자체를 존재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걸러지지 않은 날것으로 과거를 살펴야 현재를 제대로 알 수 있고, 그래야만 끊어진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래는 기억하고 기록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