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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Aug 11. 2024

개인의 재능은 약이다

-<삭의 시간> 15화. 음악치료




참사람 부족 중에는 음악적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표현으로는 음악의 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오타는 통역할 때 이따금 '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여기서 약은 의약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육체적인 치료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집단 전체의 행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개인의 재능은 모두가 약이었다.



오타는 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부러진 뼈를 맞추는 재능, 곧 '약'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기름진 땅이나 새알을 찾아내는 재능보다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그런 재능은 모두 필요한 것이고, 개인이 가진 독특한 능력이다. 나는 오타의 말에 동의하면서, 조만간 새알을 먹을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날 멋진 음악회가 열릴 거라고 누군가 내게 말했다. 우리의 빈약한 소지품 속에 악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에 물건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날 오후 골짜기를 지나가면서 나는 사람들 사이에 흥분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골짜기는 아주 좁았다. 폭이 4미터밖에 안 되고,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6미터 높이로 솟아올라 있었다. 



우리는 밤을 지내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들이 채소와 벌레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악사들은 음악회를 열 준비를 했다. 그 지역에는 원통 모양의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누군가 그 식물의 윗부분을 잘라 내고 호박 색깔의 물컹한 속살을 파냈다. 우리 모두 그 속살을 빨아먹었다. 속살 속에 들어 있는 씨앗은 한쪽에 따로 모아 두었다. 이제 속이 비어 버린 원통 위에 우리가 가져온 털 없는 짐승 가죽을 씌우고 단단히 묶었다. 그러자 멋진 타악기가 만들어졌다.



근처에 고목 한 그루가 넘어져 있었는데, 나뭇가지마다 흰개미로 뒤덮여 있었다. 누군가 나뭇가지 하나를 부러뜨리고 개미들을 떨어냈다. 흰개미들이 가지 속을 갉아먹었기 때문에, 가지 안에는 톱밥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으로 막대기를 쑤셔 넣어 톱밥을 밀어낸 다음 안에 남은 가루를 후후 불어 버리자, 순식간에 속이 빈 기다란 관이 되었다. 마치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팔을 만드는 광경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호주 사람들이 흔히 '디저리두'라고 부르는 악기였다. 그것을 입에 대고 불면 낮은 음의 소리가 났다.



악사 중 한 사람이 막대기를 서로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다른 악사가 돌멩이 두 개를 마주쳐 박자를 맞추었다. 누군가 얇은 돌조각을 실에 매달아 종처럼 흔들자,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 어떤 사람은 납작한 나무토막에 끈을 매달아 '황소 소리'라는 악기를 만들었다. 그 악기를 빙빙 돌리면 정말로 황소가 우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들은 능숙하게 소리의 크기를 조절했다. 연주 장소가 골짜기 바닥이기 때문에 울림과 메아리가 더욱 환상적이었다. 화음을 뜻하는 '콘서트'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혼자 또는 여럿이서 노래를 부르고, 종종 화음을 맞춰 노래하기도 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는 태고적부터 전해 내려오는 노래도 있었다. 그들은 달력이 발명되기도 전에 이곳 사막에서 불리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든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그 음악들은 그곳에 있는 나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음악가가 자기 안에 있는 음악을 표현하려고 하듯이,
우주 안에 담긴 음악도 자신을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에게는 문자가 없기 때문에, 부족의 지식은 노래와 춤을 통해 대대로 전해져 왔다. 그들은 모든 역사적 사건을 모래에 그린 그림이나 음악과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사실 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해 그들은 날마다 음악을 연주했다. 그들이 지나온 역사를 모두 이야기하려면 일 년 내내 노래하고 연주를 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각각의 역사적 사건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들을 순서대로 땅 위에 늘어놓으면, 지난 수천 년 동안 일어난 세계의 역사 지도가 만들어졌다.



참사람 부족 사람들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도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내 앞에서 보여주었다. 축제가 끝나자 악기들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악기를 만들면서 나온 씨앗을 정성껏 땅에 심어 새로운 나무로 자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암벽에 표시를 해두어 나중에 이곳을 지나갈 여행자들에게 근처에 나무 열매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악사들은 막대기와 나뭇가지, 돌멩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창조적인 작업을 하면서 맛본 즐거움과 자신의 재능을 보여 줌으로써 느낀 자부심은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음악가는 자기 안에 음악을 간직하고 있었다. 특별한 악기는 필요 없었다. 음악가 자신이 바로 음악이었다.



그날 나는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셀프서비스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그 삶을 누릴 수 있으며, 우리가 바라는 만큼 창조적이고 행복해질 수 있다.



작곡가와 다음 음악가들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 걸어갔다. 한 음악가가 말했다.

"아주 훌륭한 연주회였어."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그래. 가장 멋진 연주회였어."

그때 오늘 음악회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 준 작곡가가 말했다.



오래전부터 생각한 일인데,
난 오늘부터 내 이름을 그냥 '작곡가'에서 '위대한 작곡가'로 바꿀 거야.



그들은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놀라운 재능을 꽃피워, 그것을 남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자축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참사람 부족은 시간이 시작된 이래 자신들이 줄곧 그 땅에 있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그들이 적어도 5만 년 동안 호주 대륙에서 살아왔다고 추측한다. 우리를 더욱더 놀라게 하는 것은 5만 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들이 전혀 숲을 파괴하지 않고, 강물을 더럽히지 않고, 동물을 멸종의 위기에 빠뜨리지 않으며, 어떤 오염 물질도 자연에 내놓지 않으면서 풍부한 식량과 안식처를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주 많이 웃고, 아주 조금 울었다. 그들은 생산적이고 건강한 삶을 오래도록 산 뒤에,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이 세상을 떠났다.





17. 음악 치료 (162-166쪽)

<무탄트 메시지> -호주 원주민 '참사람 부족'이 문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말로 모건 지음 | 류시화 옮김
정신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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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보는 것으로 침묵과 말에 대한 실제적인 차이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cce ego mitte me -오 주여 나 보내 주소서. 주 나 여기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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