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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Sep 19. 2024

제 13 회 오랜문학상 수상작 발표

-<작가님 글도 좋아요>20화. 진아 작가님 <가을길 마음길>


제 13 회 오랜문학상은
진아 작가님의 시
'가을길 마음길'로 선정하였습니다.



작가소개

 

치유와 성장을 위해, 일곱 살 아이로 머물러 있는 어른아이들을 위해 읽고 씁니다. 

꾸준히 춤추고 열심히 끄적입니다.



1


모락모락 익어가는

가을아침 산책길

나뭇잎 이정표 따라 걷는 길

40여 년 설익은 마음

무럭무럭 익어갈 수 있을까


사락사락 휘날리는 

맑은 아침 가을길

그려 놓은 낙엽 따라 걷는 길

몇십 년 풋익은 기억

달큼하게 익어갈 수 있을까


밤새 나무가 깔아놓은 카펫길

밤새 바람이 비질해 논 가을길


쓸쓸한 마음길 비질하니

덩달아 여물어가는 대봉감.

아기주먹보다 작지만

어른주먹보다 크게 자랄 거라

뙤약볕 견디며 무던히 자라난다.


여름내 그늘만 찾아다니더니

도토리보다 작아진 마음

언제 대봉감같이 여물어갈까.


가지치기할수록

크고 단단해지는 감나무 열매

덩달아 마음나무 가지치기 한다.

무성하게 자란 욕망 잘라내고

잡초같이 뿌리내린 번뇌 뽑아낸다.


보름달보다 둥그러진 마음밭 일구며

탐스럽게 맺힐 단단한 열매 기다린다.




2


가을님 맞이하러

밤사이 깔아놓은

나뭇잎 카펫

아무도 밟지 않은 가을길

어느 고운 발 먼저 닿을까.


한 발 앞선 눈치 없는 발

고운 카펫 위 지나간다.

성난 가을 토라져서

행여 다시 돌아올까

사뿐사뿐 까치발로 걸어간다.

첫눈 위 발자국 새기듯

낙엽카펫 위 첫 마음 새긴다.




시작노트


‘love myself

only for me sensitive’


아침 산책길, 행인 티셔츠에 새겨진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타인 등에 새겨진 무심한 글귀가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동안 사랑하려고, 사랑받으려고 기를 썼던 날이 허무하게 지나갔다. 잡히지도 않을, 연기 같은 마음 무엇하러 에너지 쏟으며 안달복달했을까. 나부터 사랑하고 보듬어줄걸. 안타까운 날이 스쳐 지나간다.


존재이유를 타인과 가족에게서 찾으려 했지.

나의 존재 자체에서 찾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하고 꽃 피우는 들꽃처럼, 스스로 사랑하며 꽃 피워 볼 노력은 왜 해보지 않았을까.


익숙한 산책길, 작고 빨간 열매가 열렸다. 무슨 열매일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크기는 아이주먹보다 작았지만 틀림없는 사과였다. 꽃사과로도 불리는 돌사과.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앙증맞은 열매.


연둣빛 열매는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사과로 자라나기 위해 따가운 햇볕을 견디며 비바람을 막아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얼마나 기를 썼을까. 단단한 열매 맺으려 죽을힘 다해 가지에 매달렸겠지. 볼품없어도, 누구 하나 어여삐 돌아보지 않아도 자신을 잊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 견뎌내고 가을바람맞으며 둥글고 작은 열매를 피워 올렸다.


발그레한 얼굴로 햇살 바라보며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증명하고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빛이 났다. 자신을 믿고 한걸음 나아간다면, 자신의 한계를 의심치 않고 꿋꿋이 나아간다면 기어코 열매는 맺힐 거라고 외치고 있다.


8월의 30번째 해가 내리쬔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더라도 해는 변함없이 묵묵히 내리쬐겠지.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지라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여물어 갈 열매처럼.







가을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늦더위가 사그라들지 않는 9월 중순이 지나고 있습니다.

오가는 길에 반갑게 만난 진아 작가님의 시 '가을길 마음길'을 읊으며 울긋불긋 색이 아름답고 모든 것으로 풍성하고 여름의 열정이 더는 아쉽지 않을, 차분하고 고요한 가을을 마중 나가봅니다.



작가님의 시에 등장한 도토리, 대봉감, 보름달, 낙엽 카펫과 시작노트에 쓰인 가족과 존재이유, 돌사과 등의 이미지들에서 스치는 생각들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불안 속에서도 성실하게 해야 할 일들을 해낸 후에야 누릴 수 있는, 맑아지고 단단해지는 결실의 마음을 느끼게도 됩니다.



"울긋불긋 단풍 가을 하늘에 빨강 노랑 주황 초록 물들어가네"

노랑파랑을 만나면 초록이 되고, 노랑 빨강을 만나면 주황이 되지요. 

싱그런 초록을 찾던 마음이, 주황의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물든 낙엽 카펫을 밟으며 걷는 '가을길 마음길'이 주황의 온기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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