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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Sep 10. 2020

프리랜서의 일과가 궁금하다면

아침 7시에 시작되는 보통의 하루

아침에 두 번 알람이 울린다. 웅장한 행진곡 알람은 오전 6시 20분, 피아노 연주곡 알람은 오전 7시다. 앞의 것은 남편을 깨우는 알람, 뒤의 것은 나를 깨우는 알람이다. 남편은 나보다 먼저 일어나 집에 있는 헬스 자전거로 운동을 한다.


그사이 나는 폭포처럼 몰려드는 잠을 밀어내느라 사투를 치 르고 7시 알람과 함께 주방으로 향한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나의 일하는 패턴은 고정적인 편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아침은 커피와 빵, 녹차에 떡 한 조각 정도로 가볍게 먹는다. 내 생활이 자유로울지언정 아침만큼은 남편과 함께 먹는 것. 스스로 만들어 지키고 있는 원칙이다.


남편이 출근하면 집을 간단히 치운 뒤 오전 9시까지 개인 적이며 무용한 시간을 보낸다. 주로 별 용건 없이 거실 창가 앞자리에 앉아 볕을 쬐거나, 핸드폰으로 간밤과 새벽 사이에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글들을 훑어본다. 혹 이불 빨랫감 이 기다리고 있다면 낮의 햇살을 충분히 받아내도록 이른 시간에 세탁기를 돌리고 널어둔다. 이런 소소한 일들을 해치우며 오전 시간을 있는 힘껏 만끽한다.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빨리 일을 해치우고 빨리 놀고 싶었는데 요즘은 요령과 탄력이 붙었달까.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아침의 여유를 부린다. 거실 창가 앞에 앉으면 바깥이 내려다보이는데, 출근과 등교를 위해 사람들이 한둘씩 건물에서 나오고 도로에 차량이 늘어난다. 멀리 산의 능선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 새로이 짓는 건물의 중장비들이 바삐 움직인다. 저 공사장의 인부들은 몇 시쯤 아침을 먹고 나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입장이 나와 같다고 느낀다. 어쩐지 반갑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꼬박 서재에 틀어박혀 일을 한다. 책상 앞에는 달력 한 장을 걸어놓았고,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더블 모니터, 키보드 등 데스크 용품 몇 가지가 전부다. 회사 다닐 때 자기 책상을 소중히 다루면서 예쁘게 꾸며놓는 이들을 많이 봤는데, 그런 취향과 거리가 먼 나는 책상 위에 가급적 물건이 없는 상태가 마음이 편하다. 겨울에는 의자에 전기방석을 깔기도 한다.


오후 1시경 먹는 점심은 신경 써서 요리를 한다. 오로지 내가 먹고 싶은 것으로 메뉴를 궁리한다. 아침과 저녁은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에게 맞춰 요리를 한다면 점심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식사다. 덜 먹든 많이 먹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싶은 시간이다. 좋아하는 채소(마늘)를 집중적으로 넣은 파스타나 카레를 즐겨 만들고, 채소를 욕심껏 가득 넣어 볶음밥도 자주 만든다. 간식은 잘 먹지 않지만 출출하면 견과류나 강정을 조금 꺼내 먹는다. 하지만 혼자 먹는 간식은 별로 맛이 없다.


오후에 외출할 일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오전에 바짝 속도를 내서 업무를 마무리한다. 회사에 다닐 때는 회의가 잦아서인지 업무에 바짝 집중하기 어려웠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내게 걸려오는 전화와 주변의 전화까지 당겨 받느라 혼이 쏙 빠졌다. 그런데 혼자 집에서 일을 하게 되니 집중도가 말도 못 하게 높아졌다. 전화 역시 필요한 용건만 핸드폰으로 톡톡 전달된다.


이렇다 보니 과거 이틀간 나눠하던 일을 지금은 하루에 7시간 동안 집중하면 모두 마칠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일찍 일을 시작해 빨리 일을 끝 낼 수 있다는 점이 프리랜서의 좋은 점이다. 물론 취재가 있는 날의 스케줄은 전혀 다르다. 일을 마치면 주로 책을 읽거나 근처 호수에 산책을 나간다. 은행 업무를 보거나 남편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 오는 심부름도, 억울하긴 하지만 내가 맡아한다.

일을 마친 뒤 장보기와 산책이 아니라면 대부분 독서에 시간을 쓴다. 보통 하루 두세 시간 정도 책을 읽는다. 독서에 리듬을 타면 네 시간도 훌쩍 넘긴다. 책을 많이 읽어야 업무에 탄력도 생기고, 건강한 문장이 나온다. 글을 쓸 때마다 무언가 막힌다는 것은 내 안에 문장과 생각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책은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린다. 동네 도서관은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매우 예쁘다. 노란 벽에 커다란 창이 있는 도서관인데, 봄가을에 머무르기 좋은 예쁜 테라스도 있다. 집중하기 좋은 책상과 함께 카페에나 있을 법한 예쁜 의자와 테이블도 있다.


일과를 마치고 해가 질 무렵이면 작가 생활을 잠시 서재에 넣어두고 주부로 돌아온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저녁을 준비하고 집 안을 치운다. 이왕이면 머리카락이 어지러이 널리고 입었던 카디건이 아무 데나 훌훌 던져진 집에서 남편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식탁에 너저분한 소품이 올라오는 것도 별로다.


집 안을 치우고 깔끔하게 단장한다. 그다음 주방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한다. 이사 온 뒤 주방이 조금 넓어지고 수납공간이 많아졌다. 수납공간이 많지만 의외로 가진 물건은 많지 않아서 빈 곳이 많다. 그래서 그동안 갖고 싶었으나 사지 않았던 소형 주방가전을 구입해볼까 고민했는데, 역시 고민을 거치고 나면 사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 이래서 쇼핑은 충동구매가 제맛인가. 에어프라이어, 토스터는 내 마음에서 안녕.


저녁은 양껏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준비하는 편이다. 괜히 다이어트한다고 조금만 먹고 밤늦게 배고프면 곤란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면류의 음식을 자주 준비하는 편이다. 야키소바나 파스타, 덮밥 등을 넉넉하게 만들어 먹고 함께 차를 마신다. 그리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워 함께 책을 읽는다. 출퇴근만 안 해도 일과 주부 역할을 모두 해낼 수 있 다니, 매우 만족스럽다.


다만 결혼한 입장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를 향한 어른들의 뻣뻣한 잔소리가 있다. 직장에 나가지 않고 자유로 운 공간에서 일을 하는 직업은 어른들에게 직업답지 못하 고, 본업이 아닌 부업 정도로 보이는 모양이다. 정말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일인데 자꾸 부업 취급을 받으니 속이 상한다. 돈을 부업처럼 조금 벌어 절절매는 것도 아니고, 확고한 본업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일하는 나는 여전히 ‘살림이나 하면서 일도 조금 하는 애’로 보이는 것이다.


언젠가 명절에 만난 친척 어른이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다.

“집에서 일한다고? 그럼 거의 노는 거네. 남편 아침밥이나 잘 챙겨.”

“출퇴근 안 하면 노는 거야. 그럼 남편한테 잘해야지.”

“너 그렇게 편히 살면서 상 차릴 때 반찬은 몇 가지나 하니?”


그날의 불쾌감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출퇴근하지 않아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생활이다. 나의 노력을 잘 알지 못하는 어른들이 “집안일이나 잘해라.” “너는 놀면서 돈 버는 거다.”라는 식으로 말할 때면 “어르신 일이나 잘하세요.”라고 받아치고 싶다. 어른과의 다툼은 비효율적인 일 중에 으 뜸이라 대답을 회피하고 말았지만, 소중한 내 직업과 업무 방식이 저평가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노는 삶일까? 회사에 다니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노는 사람일까? 글쎄, 나는 ‘회사에 꼭 다녀야 한다’고 고집할 생각이 없다. 회사원이 모든 직업의 중심이 되는 것은 좋은 기류가 아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하고 저녁에 퇴근해 돌아오는 생활방식이 표준이 되는 것 역시 사람들이 획일화되는 과정일 뿐이다.


‘회사에 다니면 고되고, 프리랜서는 편하다’는 이분법적 사고보다 두 업무방식에 각기 다른 특징이 있다고 이해한다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마음에 흉터가 남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버무려지는 밤, 모두의 삶이 존중받는 사회는 아직 멀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싸늘하다. 따뜻한 차를 우려야겠다.


* 이 글은 지난 1월 출간한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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