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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Dec 27. 2024

어떤 마무리라면 괜찮을까

갭이어 열둘째 달

가는 곳마다 다른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바다와 육지,

매일이 다른 하늘과 구름과 해,

그로 인해 달라 보이는 바다와 바람이 만들어내는 파도,

적막한 고요, 그 고요 덕에 들리는 새소리,

새벽의 어둠, 그 어둠을 뚫고 나오는 가는 빛과 조용히 빛 번지는 다시 하늘과 구름,

그 반대의 시간인 석양.

겨울왕국이 된 서울과 달리 내가 짧게 머물렀던 곳은 야외에서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한 계절이었다.

덕분에 하루하루 평화로운 자연에 감동하고, 친구 출근중에는 도서관에서 차분한 시간을 보내고, 퇴근 후 친구와의 시간으로 다채로웠던 12월은 두 가지 소동과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여행 중 금전적 이슈. 이거 저거 따져보았으나, 결국은 내가 세이브할 수 있는 요소들만 주로 생각하며, 친구집에 마실 가는 듯한 자세로 방문한 캘리포니아의 어느 작은 마을은 결론적으로 백수 후반전에 방문하기에는 매우 도전적인 곳이었다. 아님 다소 무모하거나.

미친 물가에 더해 기본적으로 18/20/22%로 형성되어 있는 팁(음식점에 따라 아주 가끔 15%, 때로는 25%의 팁도 제시되었다)이 더해져, 둘이 평범한 식사를 한 끼 해도 10만 원이 넘었다. 그저 양이 조금 많은 한 접시일 뿐인데. 여기에 사이드나 디저트, 음료 어느 하나를 추가하면 몇 만 원이 증가하는 식이다. 심지어 맛있게 먹긴 했지만 기억에 남는 음식은 모두 집에서 한 소박한 끼니들이다. 이렇게 여행과 오랜 친구의 일상에 홀딱 빠져 일주일을 지내고 보니, 어느새 당초 예상했던 예산을 훌쩍 넘어섰다. 그러자니 순진했던 나의 무대뽀는 조금씩 소심해졌고, 결국 친구에게 나의 초과 상황에 대해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고백이나마 할 수 있는 친구였으니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남은 여행 동안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우울했으리라. 물론 고백이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조절하면서 먹고, 집에서 먹고 해도 결국 고물가는 고물가이므로.

덕분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이겠거니, 생각했던 여행이 경제활동의 필요성을 보다 확실히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며칠 뒤 벌어진,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대한민국 비상계엄령 선포와 해제, 그 이후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먼 곳에서 푹 자고 일어난 아침, 카톡이 난리가 나 있었다. 순간 잠이 덜 깬 탓에 꿈인지 현실인지, 현실이라면 2024년에 가능한 일인지 말이 되지 않아 눈만 껌벅껌벅. 하지만 현실이었다. 한 사람과 일군의 무리들이 만들어낸 상황과 지금까지 그들이 보이는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더불어 인간에 대한 의아함.


시차로 인해 한국에 돌아온 후, 상당히 일찍 자고 상당히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그 시간이 좋아 지금까지 부러 그 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내려 창 앞에 놓인 책상에 앉아 뉴스를 보고, 글을 쓰다 보면 저쪽 멀리 높은 건물들 사이 중간쯤 어딘가가 어슴프레 주황색으로 어둠이 열리기 시작한다. 맑은 날이면 다시 시간이 조금 지나 어느 유리 건물에 닿은 햇빛이 반사되어 멀리서 작고 밝게 빛난다. 그 후 하늘이 완전히 밝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곧 깜깜할 때 책상 옆에 켜놓은 스탠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하늘이 흐리거나, 공기가 맑지 않으면 반사의 순간은 없지만, 그렇다 해도 하늘이 밝아지는 것은 그닥 지체되지 않는다. 그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게 좋다. 퇴사 후 처음인 것 같다. 그렇게 하루 중 어둠과 빛의 경계에 있는 시간에는 글을 쓰고, 남은 시간은 뉴스를 틀어놓고 지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예정되어 있던 연말 일정을 제외하고는 최소화하고 있다.


글쓰기는 '아직' 재미있어요?

한 달 전 즈음인가... 한 친구가 물었다.

응!이라고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잠시 생각해야 했다. 그 당시 글쓰기에서 오는 흥분감은 많이 줄어있었다. 그로부터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 역시 잘 모르겠다. 생산성을 담보하지 않는 글쓰기라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지만, 노동으로서의 글쓰기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갭이어 기간 동안 유일하면서도 꾸준한 놀이로서의 글쓰기를 즐기는 중이다. 언젠가는 노동으로서의 글쓰기가 가능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인간의 희망과 기대라는 것이 참 얄궂다. 사고처럼 난데없이 맞닥뜨린 가사 공모전에 지원했으나 공식적인 결과 발표도 연락도 없으니 패스, 이왕 써놓은 거 밑져야 본전 아닌가라는 생각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지원했으나 락(냐하~ 생각하면 웃기다. 수상자에게는 미리 연락한다는 공고문의 내용을 발표 이틀 전에 재확인하고 나는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지속되는 평균치 이상의 리뷰수로 혹시 있을지 모를 청신호를 잠시 상상하던 차다. 그럼 그렇지라는 약간의 허탈감과 함께 덕분에 꽤 오래 설렜으니 됐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의 합리화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그렇다면 다음 희망의 향방은?

그냥 해보는 거지 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되겠어, 재미있으니까란 생각을 배수진으로 치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과욕일지언정 혹시, 설마... 하는 가냘픈 기대를 잡고 있는 거다. 실망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일 수도 있고, 나의 요즘을 떳떳하게 얘기하는 몇몇 친구들에게도 여전히 약간의 부끄러움이 남아있는 탓일 수도 있고, 나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내 안의 욕구를 온전히 들여다본다는 것은, 제대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순수히 인정한다는 것은, 입 밖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그리고 내 밖의 현실을 직시하고 수용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으로 인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하는 요즈음이지만, 작정하고 단순하게 지내는 12월이지만, 최소한의 약속으로 꾸려지는 바깥 시간은 그래도 연말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역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게 해 준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정박의 속도로 가는 시간을  따라 뚜벅뚜벅 걷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달의 목표는 시간을 잘 마무리하는 거다.

2024년 올 한 해도, 12월 한 달도, 갭이어로 이름 붙였던 1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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