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이어 아홉째 달
새로운 달의 1일을 시작하면서 지난달을 되짚어 보는 건 꽤 많은 이들의 습관일 거다. 출퇴근을 할 때는 1일 또는 첫 주 월요일 아침 삑 소리와 함께 찍히는 버스카드의 1500이라는 숫자로 새 달이 시작되었음을 소스라치게 알게 되곤 했는데, 오히려 날짜와 상관없이 지내는 중에 날짜 가는 것을 꼬박꼬박 인식하게 된다. 심지어 금요일 [나 혼자 산다]가 시작하는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 나만의 주말을 의식처럼 챙기곤 한다. 하는 일이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을지라도,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9월의 첫 월요일을 시작하며, 예외 없이 지난 8월을 생각하다가 9, 10, 11, 12월... 아직도 2024년이 4개월이나 남았다는 긍정적인 사실을 뜬금없이 떠올렸다. 올해 지나 보낸 시간이 까마득히 많지만, 여전히 남은 날도 많다. 그러니 아쉽거나 씁쓸해할 필요 없구나 싶었다.
아마도 지난달의 시간에 아쉬움이 남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지난달에 탐탁치 않은 순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나 스스로 방어기제 아니면 보상심리가 작동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근거 없는 긍정성으로 9월을 시작하고, 보냈다. 추석이 들어 있는 9월은 여전히 더웠다. 즉, 의지를 다진 시작에도 불구하고 개운한 컨디션과 맑은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4월에 시작해 5월에 급격히 빠져들었다가 일정이 많았던 6월 즈음 드디어 벗어났나 싶었던 드라마 몰아보기가 7월부터 다시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는 바람에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했다. 1주일에 거의 2-3편(2-3회 말고) 정도 보는 수준인데, 요즘 드라마는 10-12회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예전 드라마들은 대부분 16회 완결이다 보니 소요 시간이 꽤나 많다.
몰아보기라는 게 원래 그런 건지, 맘만 먹으면 다른 방해 요소가 없어서인지 보다가 중간에 끊기가 상당히 어렵다. 한 번 시작하면 밤잠을 줄이면서 모니터 앞에 앉아 짧게는 1.5일, 길게는 2.5일의 시간을 오롯이 투입한다. 그래도 그 이상 여유롭게 보지는 못한다. 재미있으면 다음이 궁금해서, 재미없으면 빨리 끝내려고. 웬만하지 않고는 한 번 시작한 드라마를 중간에 다른 것으로 갈아타기가 퍽이나 어렵다. 어떤 때는 1.25배속(디즈니플러스는 속도 조절이 안돼 아쉽...)으로 돌려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화면뿐만 아니라 소리들의 잔상이 뇌에 남아 자려고 누워서도 머리가 엄청 시끄럽다. 웃기는 건 이렇게 몰아 보다 보면 어느새 제목과 이야기와 배우들이 뒤섞이고, 그러다 홀연히 증발해 버린다. 고로, 웬만한 차별점을 갖지 않고는 머리에 남아있질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내 머리야... ㅠ.ㅜ
9월에는 특히 수사물을 많이 봤는데, 어찌나 흥분과 긴장과 쾌감을 골고루 느낄 수가 있던지 신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익스트림 스포츠나 활동적인 무언가를 하면서 느낀다는 도파민을 나는 의자에 앉아 드라마를 통해서 해결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 몸과 정신을 망가뜨리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시간과 강도를 볼 때 불현듯 이게 중독인가 싶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 한심해?”
비단 드라마 시청뿐만이 아니다. 먹는 것도 상당히 강박적으로 먹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드라마나 방송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먹고 싶어 한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한 밤의 먹방도 타격이 없었는데, 지금은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먹거리들에 관심이 갔다. 눈과 귀는 계속해서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으나 손으로는 배민을 검색하며 흘긋거리고 언제 먹을지 따져본다. 왜 수많은 업체에서 그렇게나 드라마에 PPL을 하는지 너무나 이해가 됐다. 눈에 뜨이면 식욕이 동하기 마련임을.
처음에는 쉬니 몸이 편해지고, 몸이 편해지니 입맛이 돌고, 입맛이 도니 맛있고, 맛있으니 이것저것 잘 그리고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되짚어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감동과 만족과 희열과 위기와 분노와 스릴과 절정과 해소. 알게 모르게 희로애락 대부분의 감정을 일과 일을 통한 사람들에게서 얻었던 것 같다. 그 널을 타는 감정들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학습된 것인지 성향 탓인지 그 감정들을 극단적으로 느끼는 편이었고, 그래서 그 외에 더 이상의 감정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감정을 느끼는 센서 자체가 마모된 것 같은 순간이 오고, 그렇게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가슴은 무기력한 몸을 동반했다.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사라진 지금은 드라마와 먹거리(그것도 대부분 군것질거리)에서 찾고, 그걸 통해 해소하고 있다. 좋은 거라고 해야 하나, 안 좋은 거라고 해야 하나... 명확하지는 않다. 감정을 넘어서 욕구가 있다는 것은 꺼진 전등에 불이 들어온다는 표시이기에 긍정적이나, 그 욕구의 대상이 드라마와 먹거리라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 그런데 나는 좋으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한다. “나 한심해?”
드라마 한 편을 끝내고 오도독 허리와 어깨를 펴며 생각한다. "나 한심해?"
며칠 만의 외출임을 깨닫고 생각한다. “나 한심해?”
땡기는 대로 마구 먹고 생각한다. "나 한심해?"
나의 중독성향과 그 상황에 대해 반복적으로 인식하게 되던 이때 가장 많이 한 말은 ‘나 한심해?’였다.
청자가 나인 경우에는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고,
청자가 타인인 경우에는 다행히 “아니, 그럴 때도 있는 거지”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대답해 줄 게 뻔한 이에게만 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 다른 대답은 들을 용기도 의사도 없어서. 그런데 '그럴 때'가 언제까지일까? 과연 끝나기는 하는 걸까?
하지만 계절이 보우하사, 8월까지는 드라마로 가득 채워진 시간이었다면, 9월엔 조금 달랐다.
처음으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대여해 읽었다. 아침과 오후 어느 시간에 방문하든 도서관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을 열고 있는 사람… 뭐든 열중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지금 어디쯤 있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결론은 아직 놀아도 괜찮아,지만.
출근시간이라는 외부의 규제에 맞춰 사는 것보다 자발적 계획과 의도에 따라 시간을 운영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현재의 나는 아무리 내가 만들어낸 루틴이라고 해도, 스스로 목표로 삼고 있는 일이라고 해도 시간 맞춰, 꾸준히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제도 아래 사는 것이 어렵지만, 누군가는 자율 아래 사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물론 경험치에 따라 달라지기야 하겠지만, 주변의 프리랜서 또는 자영업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직장생활 그리고 갭이어 생활 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한 많은 사고구조가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사고는 여전히 직장인 노동자 층이었다. 그래도 흐트러지고 늘어졌던 나와 시간이 조금씩 탄력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끼도록 마음먹었다.
특별한 9월은 아니었다. 여전히 드라마를 보고, 그간 보다 책을 좀 더 읽고, 기억나지 않는 꿈을 꽤 많이 꾸고, 45분 내외의 낮잠을 꽤 규칙적으로 자고, 두어 번 찌인하게 조카를 만나 놀고, 상상을 많이 하고, 그 상상을 이따금 기록하고, 잠에서 깨기 전 갑자기 더위를 느껴 갱년기 증상을 잠시 의심해 보았던 9월이었다.
그렇게 10월이 가까워지면서 내가 머무는 공기는 분명히 조금씩 기온을 떨어뜨리고 있었고, 하늘과 구름은 가을스럽게 아름다운 날이 많았다.
이달의 목표는 첫째 자전거 타기.
자전거를 타겠다며 설레던 나에게 일단 타보고 구입여부를 결정하라며 기꺼이 자전거를 빌려주겠노라 한 친구에게서 자전거를 가져오는 것도 몇 달 지연, 가져와서도 한동안 묵혀두었다. 너무 덥다 못해 뜨거운 날씨 때문에. 그렇게 탄 자전거는 너무 오랜만이었던 탓에 생각보다 좀 무서웠다. 근데 역시 몸이 부분적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끌고 내려와 자전거길이 있는 곳까지 나가는 게 고생이긴 했지만, 맘만큼 속력을 낼 순 없었지만, 의욕만큼 오래 탈 순 없었지만 두 발로 페달을 밟아가며 달려가는 순간과 바람 소리가 너무 행복했다.
둘째는 독서와 글쓰기. 하루하루를 보면 꾸준하다 하기 어렵지만, 전체 기간을 놓고 보면 나름 지속했다 말할 수 있는 정도? 그게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