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퇴사 후 갭이어로 1년을 꽉 채워 보냈고, 그 기록도 끝이 났다.
기록에 우울한 이야기와 감정, 상태가 많이 보이는 건 상대적으로 도드라지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 우울의 기억과 감정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대부분이 좋은 시간과 긍정 마인드였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감정과는 상관없이 몸의 에너지는 다달이 채워지고 있었다. 덕분에 몸이 감정을 따라 고꾸라질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1년 뒤, 어느 만큼의 시간 뒤의 나를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말없이 딸내미를 걱정하는 부모를 가끔 살짝 느끼며, 그 걱정 내가 하고 있으니 당신들은 하지 마시오, 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또한 나의 의무라 생각했다.
누구는 부러워했고, 누구는 의아해했다.
누구는 응원했고, 누구는 책망했다.
누구는 위로했고, 누구는 격려했다.
그 말과 마음의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느낀다.
그리고 또 알게 되었다.
난데없이 맞닥뜨린 사고처럼 나에게 조차 두려움이 있던 퇴사 후의 이 기약 없는 휴식이, 갭이어가, 백수생활이 분명 다음으로 건너갈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또 막연하고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위아래로 불끈거리는 마음을 다듬어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몽돌처럼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전히 감정의 널을 타고, 그 와중에 욱하는 성격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있었음이 확실한 온화한 성격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세상엔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기엔 정말 화가 나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오히려 더 격하게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감정을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벗어나는 훈련을, 한 발 떨어지는 훈련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하게 된 것 같다.
이 시간을 보내며 일을 해도 되는가를 고민했던 것은
그 순간(순간들이 모여 결국은 긴 시간이 되었지만) 일이 고프지 않았기 때문이고(경제활동 차원에서 말고),
일이 고프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기 때문이고,
더불어 나의 심리적 신체적 에너지 레벨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다.
보통의 성인은 무엇이 되었든 나를 책임지기 위한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당연한 일이라면(사실 이조차 의심하는 순간도 있었다) 내가 다시 흥미로울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게 예전의 것이든, 새로운 무언가이든.
예전에 공연 때문에 읽었던 책([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중에 향락적 노동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겨울 여행길에 가지고 갔었다. 과거 나에게 노동은 향락이었고, 향락이 곧 노동이었는가. 작가의 모든 주장과 설명에 공감하고 인정할 수는 없지만, 어떤 진단들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것. 나는 몰아치는 일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위의 시간도 좋아할 수 있고, 생각보다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한 사람에게 있어 일의 의미가 궁금하고, 나에게 있어 일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놀다와 쉬다의 개념도 헷갈린다. 시간이 많으니 의식적으로 나를 살피는 시간이 많아 좋은데, 현재의 신체적, 정서적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나에 대해서도 재차 생각하게 된다. 그러자니 꽤나 오랫동안 살아온 내 모습과 관계 맺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자책은 필수요, 가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았다는 위안은 덤이다. 그럼 됐지 싶다. 그러다 보면 다음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에 도달한다. 당위에 대한 회로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지난 수년 동안 중에 지난 1년 간 나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안부와 일상을, 그리고 생각을 궁금해해 주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이야기하고 글로 적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 역시 만나는 이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이 생겼다.
너무나 오랫동안 해야 할 말, 할 수 있는 말을 고르고 고른 단어로 하면서 살다 보니, 차라리 말을 줄였던 듯하다. 하지만 조금은 투박해도, 조금은 내밀해도, 조금은 가벼워도 내 입을 통해 나간 말들이, 그리고 상대방의 말들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신이 났던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이 담긴, 마음이 담긴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
내가 얼마나 이 시간과 경험을 오래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살다 보면 또다시 증발해 버릴 기억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실제로 이런 시간을 보냈었고,
이런 시간이 내 안 어딘가의 감각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이런 시간이 부분적으로나마 글로 남아 다시 들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 재생되는 기억이 순수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임을 미리 새긴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다시 시작하는 나를 꿈꾼다.
언젠가의 이효리가 그랬다. 가능한 것만 꿈꾸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나도 그러고 싶다.
가능하지 않을 법한 것도 꿈꾸고 싶고, 그중에 어떤 건 가능하게 만들어보고 싶고, 또 꿈으로 남겨두어도 괜찮을 것들을 여전히 꿈꾸고 싶다.
누군가는 고딩이냐고 되물어도, 세상의 나이에 비해 조금 때로는 많이 늦자란 듯 보여도, 남에게 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가능한 사심 가득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새해, 이 달의 목표는 컨택이다.
몇 달이 될지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이 목표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소소한 글을 계속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을 잘 지낼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친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끄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