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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May 31. 2024

[오늘의단상] 지하철에서 홀로 감성 놀이

"1호차에서 청소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 조속한 확인 후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역 하나가 채 지나가기도 전에) 

"1호차 청소민원은 동대입구역에서 처리 조치하겠습니다."


(동대입구역으로 들어서며)

"이번 역에 도착하는 대로 청소하겠습니다. 저희 직원이 도착하면, 위치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신속히 청소 중에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완료되었습니까?, 출발하겠습니다."


비가 조금 흩뿌리던 지난 일요일 오후

상대적으로 한산한 3호선 지하철에 안내방송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진다. 

안내방송 사이사이 저들은 얼마나 분주했을까.


어딘가 지저분하니 치워달라는 승객의 의견이 접수되었을 테고,

얼마나 어떻게 지저분한지 확인했을 테고,

어디서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협의나 판단을 했을 테고,

그게 가능한지 역 근무자에게 연락했을 테고,

역 근무자는 근무 현황을 파악하고 응대했을 테고,

타임 체크를 해 주고받았을 테고,

청소 담당자는 해당 시간에, 해당 칸에 타기 위해 서둘러 내려와 대기했을 테고,

열차가 해당 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했을 테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자마자 들어섰을 테고,

구체적인 위치를 찾아가 재빠르게 청소를 했을 테고,

완료 후 열차에서 다시 빨리 내려야 했을 테고,

차장과 청소담당자는 완료 여부 확인을 주고받아야 했을 테고,

더 지체되지 않도록 열차는 출발시켜야 했을 테고.   

그리고 그 사이사이 방송을 했다.   


민원, 접수, 조치. 

그 짧은 순간, 이런 단어들이 오늘따라 왜 이리 가슴에 박혀 묵직하게 눌리는지. 

신속, 정확, 안전, 공유.

그들의 수고로움과 노고가 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다른 라인은 자주 이용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지하철 3호선에서는 이따금 차장 목소리의 라이브 안내방송(라이브 맞겠지?!)이 나온다. 

대부분 강을 건너는 그 주변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좋은 하루를 기원하는, 이용에 감사하는, 안전 운행을 약속하는 스몰 토크보다 더 짧은 쁘띠 토크. 

가끔 잘 들리고, 대부분 잘 들리지 않는 그 짧은 안내방송 덕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때가 있다. 

같은 분인지, 차장 개인의 취향인지, 매뉴얼인지, 지침인지, 약속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멘트에 감동은 투 머치 감성이라고 자책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가움을 느끼고, 때로는 환기가 된다. 

세상에는 화가 나는 일도 많지만, 

예기치 않은 순간 타인으로 인해 감동을 느끼게 되는 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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