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
드디어 10월 한 달 동안 1주 단위로 4개의 쇼케이스를 끝냈고 이제 합평회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공연 마지막 날, 올해 시작과 끝을 제대로 마무리한 첫 사업이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네요. 시작도 못하거나, 중간에 취소되거나, 앞 회차를 취소하고 늦게 시작하거나... 코로나 때문에 모든 공연이 끊임없이 멈춤과 재가동의 반복이었잖아요. 공연 준비를 하면서 프로덕션 내에서의 코로나 방지는 물론 관객들을 위한 공연장 관리에 공연마다 다른 객석과 무대의 배치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꽤나 신경 쓸 일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정부 차원에서의 모임 금지가 언제 있을지 몰라 대면 공연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온라인 송출에 대한 고민까지도 같이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성공! 시간은 어느새 11월이 되었고, 올 해도 2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전염병이 없던 작년의 11월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감정의 아무런 감각이 없는데, 감각이 없는 것을 좋아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일희일비하고, 행복과 슬픔과 분노를 소소하면서 격하게 느끼는 저로서는. 이 변화가 어느 때부터였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작정한 것인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어렴풋이 알다가도 모를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지지난주 일요일, 고질적인 허리통증이 다시 발병했습니다. 일이 년에 한 번씩은 꼭 탈이 나서 한의원을 몇 번 찾아야 하는 고질병.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시간이 조금 남아, 청소기 한 번 돌리고 나가자는 생각에 괜히 바지런을 떨었는데 앗차 싶은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 이후는 뭐… 지난 2주 동안 사무실에 반드시 앉아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거의 서 있었습니다.
여전히 공연이 남아 있는 시점이라 극장을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해야 했고, 꽤 불편한 소극장 객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자리에 앉아 메일을 쓸 정도로 많이 좋아졌지만 매주 2회 했던 운동은 못하고, 아주 살금살금 최소한의 일상만 소화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 일상이라도 너무 감사한데, 순간순간 찾아오는 묵직한 통증이 가슴 졸이게 합니다. 아직 며칠이나 더 갈지 모르겠습니다. 몸이 안 좋다 보니 모든 신경이 몸에 가 있습니다. 아주 조그만 이상 신호라도 모두 잡아낼 것처럼. 대신 다른 곳에는 무감각해지네요.
오늘은 강현주 연출의 <배를 엮다>를 보고 왔습니다.
담당 공연이 끝나고 기분 좋은 나들이가 되리라는 생각에 기대하며 예약했는데, 몸이 이러니 걱정이 앞서더군요.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일단 갔고, 운이 좋게도 여차하면 일어서서 볼 수 있는 맨 뒷줄 콘솔 옆 자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전편찬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단어의 의미를 짚어보는 순간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쓸데없는 순간에 단어 하나에 집착하곤 하는 습관이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글이 시간의 자욱을 남기는 일이라면, 단어는 마음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순간, 단어 하나하나에 마음을 실을 수는 없지만.
그런데 요즘은 적당한 단어가 적시에 떠오르지 않아 멈칫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단어를 끌어올리는 것도 힘들고, 새롭게 단어를 저장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래서 무서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인식하지 않고 살던 나이가 나 여기 있다고 자신을 증명하는 느낌입니다. 평범한 인간의 나이는 이런 식으로 나를 엿먹이는가 봅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일'만' 하고 있는 제가 안타깝기도 싫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런데… 그렇다한들… 그렇지만… 일을 놓을 수가 없어요. 하하하!!!
아, 저의 요즘 두 번째 관심은 공기입니다. 인간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곧바로 공기가 더러워지더군요.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