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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Sep 01. 2024

그저 짤막한 공감이기를

2020년 11월 #3

오늘 저녁 퇴근 후 번개로 친한 언니를 만났습니다.

대학로에 있을 때 일로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이후 공연도 보러 오고 이따금 갑자기 약속을 잡아 만나는 친구인데 코로나 때문에 몇 달 만에 만난 것 같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걸맞은 감자옹심이메밀칼국수를 따끈하게 먹고, 집에서 달달한 디저트와 커피를 마셨습니다. 

만나면 가끔 행복이란 뭘까,를 생각하게 되는 친구입니다. 저보다 더 최소한인 친구와 가족이 생활의 '초초'중심('초'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이고, 그 가족을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잘 안 된다는 소규모 자영업을 하고. 계속 직장 중심의 사회생활을 하는 저와는 삶의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 보니, 아주 가끔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먹고살 만큼은 수입이 있는 건가.ㅎ 성장과 성공, 보다 많은 수입을 위해 기를 쓰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만, 그런 사람들과는 달라 삶의 많은 모양을 생각하게 합니다. 잘 먹고, 잘 감탄하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 행복의 또 다른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친구이기에 헤어지면서 편한 마음으로 집에 있는 것 중 나눌 수 있는 소소한 몇 가지를 나눴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과일 두어 개, 작은 치약 한 개, 초코렛 몇 개... 늘 이런 식입니다. 소소하지만 크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받아 괜스레 기분이 더 좋습니다. 

언니가 가고, 씻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얇은 키보드 소리와 함께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작게 들려옵니다.


이번주에는 공연장에 O 작가가 왔었습니다.

언젠가는 등장하리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때 좋아했던 작가였는데, 우연히 만나면 나름 반가운 얼굴이었는데, 이상한 일이 생겨 편하게 마주하기만 할 수는 없었던... 오랫동안 그가 무대에 창조해 내는 세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캐릭터에서 새로움과 의아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던 사람.

인사를 나누며 몇 년 만에 개인적인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의아하죠. 하지만, 맨숭맨숭 인사 없이 지나쳤어도 역시 의아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나저나 어제 반갑게 메일을 읽었습니다. 그제였나?

매주 보내는 레터는 저에게 어떤 의식과도 같습니다. 또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이야깃거리가 찾아지지 않고 너무 소소한 내용이 되는 것 같아 다소 걱정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부분 언제나처럼 지나 보내는 하루하루와 같이, 특별하지 않게 지나 보내는 지난주와 같은 이번주도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냅니다. 

결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이 있고,

차마 밖으로 꺼내지지 않는 생각들이 있고,

애써 맘먹고 반복하지 않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투적인 말들을 적어 내려가기도 하지만, 

그 순간조차 진심을, 정성을 들입니다. 

메일의 수신자를 향해서도, 발신자를 향해서도. 

그런 시간입니다.

팍팍한 세상이어도, 

웃을 일 많지 않은 세상이어도, 

자잘한 것들로부터 상처받는 일이 다반사인 세상이어도, 

우리에겐 그런 순간이 필요하고, 가치 있으니까요.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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