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 열여섯 번째 108배]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몰라?"
봉정사와 광흥사에 들른 다음 날 오전,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둘러보고 안동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영주로 넘어간다. 안동에서 영주까지는 차로 1시간.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안동과 영주 간 국도는 차가 많지 않다. 국도를 달리는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풍경이 잿빛으로 변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나 보다. 비가 내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운치가 있겠지 하기로 했다.
부석사로 가는 길에 풍기역 근처에 들러 청국장으로 점심을 먹고 소수서원을 들렀다 부석사로 간다. 밖에 바람이 많이 불고 있어서, 것도 모래바람이라 남편이 본인은 차를 지켜야 해서 주차장에 있을 테니 아이와 둘이 다녀오란다. 남편이 찾아본 바에 따르면 부석사는 주차장에서 내려 30분은 걸어야 한다고 했다. 단지 걷기 싫은 게 틀림없다.
얼른 휴대폰을 열어 부석사 주차 꿀팁을 찾는다. 검색해 보니 부석사 옆 새로 짓고 있는 박물관까지 올라가는 길이 있고 그 옆에 주차장이 있단다. 거기에 주차를 하면 힘들게 걸어 올라가 무한의 계단을 오르지 않고도 쉽게 무량수전으로 갈 수 있다 했다.
아주 오랜만에 부석사에 와본다. 병산서원도 그렇고 부석사도 그렇고 오랜 젊은 날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라 기분이 묘했다. 운전을 하며 남편이 부석사는 뭐가 유명하냐고 해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유명하다고 했다. 기억나지 않느냐고. 교과서에 나와 유명해졌다고. 최순우 선생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나도 부석사의 존재를 몰랐을 게다. 강렬한 교과서의 기억. 수능도 보지 않고 대학에 간 이과인 남편은 기억이 안 나나보다.
사실 나는 20여 년 전에도 그 배흘림기둥을 보러 갔다가 부석사에서 내려다보이는 능선이 그렇게 아름다워 내 마음의 절로 점찍어 뒀었다. 마음이 산란하고 어지러울 땐 꼭 이렇게 부석사에 와야지 했다.
그리고 그 후 마음이 어지러웠을 때 다시 부석사를 찾았다. 부석사 산에 아무도 못 볼 편지를 타임캡슐처럼 묻고는 한참을 앉아지는 해가 넘어가는 능선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었다. 그 편지는 지금 없겠지.
아이와 부석사 무량수전에 올라간다. 절 경내에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무량수전 내부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절하기 좋았다.
무량수전 안에는 엄청나게 큰 배가 부른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고 안에는 커다란 불상이 있었다. 절할 공간도 넉넉해서 천천히 마음을 담아 절했다. 절에 오기 전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며 진통제를 한 알 먹었다. 다리가 아프면 무리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했는데 좀 나아졌다며 기어코 108배를 한다.
나보다 먼저 108배를 끝낸 아이한테 어제 광흥사 주지스님께 받은 용돈을 내어준다. 아이에게 가서 소원 빌고 불전함에 넣으라고 했다. 아이는 불상 가까이에 가서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빈 뒤 복전함에 스님께 받은 지폐를 넣는다. 나는 나머지 108배를 마저 하고 기도를 하고 나온다.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경내를 구경하던 남편이 그랬다. 부석사가 여태 다닌 절 중에 제일 상업적이지 않다고.
그러고 보니 시주를 받아 기와를 쓰거나 등을 달거나 초를 켜거나 소원지를 다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색도 강하지 않아서 나무와 창호지, 오래되어 빛바랜 단청 정도만 조화롭고 소박하고 잔잔하게 남은 절. 이래서 내가 부석사를 좋아하나 보다.
무량수전을 나와 뜬돌도 구경하고 뜬돌 근처 마애불상에 인사도 하고 걸어 나온다. 모래바람이 너무 불어서 숲에서 파도소리가 났다. 휴대폰으로 계속 강풍, 산불 주의보 알림이 온다. 이런 바람에 불이라도 나면 정말이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예전에 부석사에 올 때 한참을 오르막 길을 걸어 올라왔는데 오늘은 부석사 근처까지 차를 몰고 와서 오르는 길의 풍경을 구경하지 못했다. 그게 백미인데.
나가는 길에 천왕문 있는 데까지 계단을 내려가며 절 아래 펼쳐진 풍경을 본다. 그때 그 풍경과는 좀 다른 느낌. 모래바람이 부는 오후여서 그런 건지, 걸어 올라오는 수고로움이 빠져서 그런 건지, 아님 새로 바닥에 돌을 깔아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 느낌은 아니다.
더 내려가지 않고 다시 걸어 올라와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모래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안경에 먼지가 잔뜩 앉아서 얼른 집에 가 씻고 싶은 기분이다. 다음에 날 좋을 때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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