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의왕 청계사] 층간소음에서 해방되게 해 주세요

[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 열두 번째 108배]

by ordinaryclip
2026. 2. 18. @경기 청계사 [열두번째 108배]


층간소음에서 해방되게 해 주세요, 제발!!




그즈음 나는 극심한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매일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대체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 모르겠다.


2년 반쯤 전에 윗집이 이사 오고 애들 뛰는 소리, 어른 발망치 소리, 애들 소리 지르고 우는 소리, 어른 고함치는 소리를 매일 듣고 살고 있었는데 최근 6개월 매일 들리는 윗집 소음에 더해 가구 끄는 소리와 알 수 없는 진동 소음으로 고통이 증폭되고 있었다.




층간소음의 괴로움이 최고조에 달한 날은 설 연휴였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드르륵 하고 가구 끄는 소리가 났다. 평소에는 하루 두세 차례 웅 하고 울려대는 기계 진동 소음도 이날은 여섯 차례가 넘게 울렸다. 안마기인지, 건조기인지, 스타일러인지, 운동기구인지 모를 그 진동음은 한 번 나면 10-20분 동안 계속되었고, 20-30분 간격으로 4-5회씩 웅 소리가 계속 났다. 그러니까 진동소음의 한 사이클은 거의 1시간 가까이 되는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진동이 몸으로 전해지고 머리가 다 울릴 지경이다. 귀에 이명이 생길 것 같아 진동소음을 피해 거실로 나오면 이번엔 가구 끄는 소리가 났다. 소음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자정이 넘어서도 이어졌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쪽지를 써 윗집에 붙여두었다. 쪽지를 보면 그만하겠지 싶어서.


그런데 쪽지를 읽지 않은 건지 소음은 자정을 넘어서도 다음날 아침에도 반복됐다. 너무 괴로워 관리실에 연락해 윗집에 전해 달라고 했다. 관리실에서 윗집은 부재중이라 본인들이 내는 소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아무도 없는 집에 이렇게 소음이 계속 날 수 있는지, 혹시 도둑이라도 든 게 아닌지 물었더니 윗집에서는 집에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었다고 했단다. 오후에 윗집 남자가 관리소장 입회 하에 만나고 싶다고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관리소장실에서 윗집 남자를 만났다. 윗집에서는 가구 끄는 소리와 기계 진동음은 본인집 소음이 아니라고 했다. 소음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날 윗집은 여행으로 집을 비웠다고. 윗집이 매일 내는 애들 뛰는 소리와 발망치소리, 울고 소리 지르는 소리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어느 날 쿵 소리가 들리고 애가 울고 남자가 고함을 치는 소리가 나서 경찰에 신고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하자 남자가 얼굴을 붉혔다.


윗집 남자에게 그쪽이 이사오기 전 지난 8년은 층간소음 모르고 조용히 잘 살았는데 윗집 이사 오고 난 후부터 매일 층간소음으로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원래 천주교인데 요즘 절에 다니며 108배를 하고 있다고, 윗집 잘 되어서 나가게 해달라고 빌고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윗집 남자가 윗집이 본인 아버지 집이라며 곧 증여받을 거라고 했다.


망했다. 이사 온 후 2년마다 세입자가 바뀌어서 이번 세입자도 2년만 참으면 나가겠거니 하고 참았는데. 2년이 지나도 안 나가길래 전세 연장을 했나 했는데 증여라니. 이사 온 직후 천장 누수 때문에 관리실에 연락했을 때 본인들은 세입자라 모른다고 해서 세입자라니까 이웃이니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 손해배상 청구도 안 했는데 집주인 아들이었다니.




청천벽력과 같은 이 소식을 분개하며 전했더니 눈치를 살피던 남편이 기분 전환하러 청계사에 가자고 한다. 청계사는 극락보전 관음불상에 불교 경전에서 상상의 꽃이라 불리는 '우담바라'가 피어 유명해진 절이다. 젊은 날 근처에 야유회로 가끔 가던 청계사가 천년고찰이라는 것을 이번 108배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 알았다.


아이와 나는 극락보전에서 108배를 했다. 아이는 요 며칠 절을 안 했더니 몸이 근질거린다며 108배를 하고 싶다 했다. 전날 외할머니한테 받은 108배 염주를 챙겨 오겠다고 했는데 깜빡 잊고 놓고 왔다며 아쉬워했다.


오늘 108배 소원은 층간소음을 없애달라는 걸 제일 먼저 빌었다. 층간소음 없애주세요. 소음원을 없애주세요.라고. 아이도 같은 것을 빌었다고 했다. 층간소음 때문에 소음일지를 쓰는 걸 보고 언제부턴가 아이도 소음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써둔 소음일지를 죽 보면서 아이가 윗집은 정말 너무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속되는 층간소음 때문에 모처럼 평정심을 잃었는데 108배를 하고 나니 번뇌를 내려놓은 듯 조금은 개운해졌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층간소음에 시달릴 테지만 108배를 마친 그 순간만큼은 108배를 하기 전보다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108배가 마음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피그말리온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108배를 하러 다닌 이후 소소한 행운들이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주차장에 가면 자리가 있거나, 없어도 금방 자리가 나거나 하는 것 같은. 사소한 감사거리가 늘었다.


간절한 층간소원 해방 소원도 이루어지면 참 좋겠는데.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 봐야겠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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