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 열 번째 108배]
오늘로 천년고찰 10개 108배 프로젝트 완료!
강화도에 당일치기로 여행을 하기로 했다. 곧 연휴 시작이라 멀리 가면 차가 막힐 게 뻔하고 숙박료도 올라있을 것 같아서 근교에 있는 천년고찰을 골랐다. 섬 전체가 유적지에 가까운 강화도에는 전등사와 보문사 두 개의 천년 고찰이 있다.
간식으로 오징어를 굽고 커피를 내리고 과자를 챙긴다. 운전을 잘 못하는 터라 대중교통으로 닿기 어려운 곳에 갈 땐 남편의 도움이 필요한데, 마른오징어를 주면 남편은 군말 없이 어디든 운전해 준다. 말에게 당근을 주듯 남편에게 오징어를 챙겨준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남편은 오징어를 질경이며 운전을 하고 조수석에 앉은 아이는 쉴 새 없이 떠든다. 나는 뒷자리에서 전자책으로 읽던 <휴식의 말들>을 마저 읽는다.
집에서 보문사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생각보다 먼 거리다.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는 강화도에서 들어가는 다리가 하나고 석모도 안에서도 돌아 돌아가야 해서 지도에서 보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인천 공단을 지나 강화대교를 들어서니 군데군데 논밭이 펼쳐진 마을이 나온다. 높은 건물이 없는 마을 사이로 왕복 이차선 좁은 도로가 구불구불 앉아 있다. 유영하듯 천천히 마을길을 달린다. 창문을 여니 비릿한 바다내음이 바람을 타고 코끝에 닿는다.
한참을 달려 보문사에 도착한다. 점심시간인데도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가 많다. 주차비는 2000원으로 다른 절에 비해 저렴했는데, 다른 절들과 달리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어른 2000원, 초등학생 1000원.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간다.
올라가는 길은 가팔랐다.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숨이 차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러다 보문사 입구에 다다르기 전에 방전될까 봐 중간중간 걸음을 멈춰 숨을 골랐다.
가는 길에 가게에서 나와 행인들에게 먹어보라고 유과를 나눠준다. 인심 좋은 사장님이 한주먹 나눠준 유과를 입에 물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달달한 유과를 동력 삼아 무거운 다리를 한발 한발 떼며 천천히 경사로를 오른다.
108배를 하러 다니느라 이제 막 체력이 붙기 시작한 아이는 앞서서 뛰어 올라간다. 남편은 경사를 오르는 게 힘겨운 듯 멀찌감치 뒤에서 헉헉대며 올라왔다.
경내에 다다르자 절 뒤로 이어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산 끄트머리에 밋밋한 바위 벽이 있다. 찾아보니 그 벽 위에 마애불이 있단다.
낙가산 중턱에 있는 눈썹바위라 불리는 암벽에 조각된 이 마애불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석불좌상은 높이 9.2m, 폭 3.3m로 거대하다. 여기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과 함께 4대 해수관음 성지로 알려져 있다.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다른 곳보다 더 기도가 더 잘 듣는 소위 '기도빨(?)'이 좋은 곳이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그곳을 향해 끊임없이 오르고 있었다.
경내로 올라오는 길도 가팔라서 마애불을 보려고 끝도 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은 아래에서 기다릴 테니 우리 보고 올라갔다 오란다. 계단 앞에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이라고 쓰여있는 걸 보더니 아이가 아빠도 같이 올라가잔다. 찾아보니 마곡사처럼 '기도빨(?)'이 좋은 곳이라 했더니 머뭇대던 남편이 마지못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보통 대웅전에서 108배를 하는데 마애불 앞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보문사가 해수관음 성지이기도 해서 올라온 김에 여기서 108배를 하기로 했다. 오늘이 열 번째 천년고찰 108배라 프로젝트 성공 기념으로 왠지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마애불 한편에 층간소음매트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좌복을 쌓여 있었다. 두 개를 꺼내어 그중 하나를 아이에게 건네줬는데 아이가 바닥에 그냥 놓는 바람에 쿵 소리가 났다. 아이에게 그렇게 소리 나게 놓으면 안 된다고 조용히 주의를 줬더니 올라오느라 힘들어서 그랬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힘든 건 이해하지만 네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게 용인되는 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아이가 풀 죽은 목소리로 다음부터는 주의하겠다고 얘기한다.
나는 아이에게 두 가지 상황에서 매우 엄격한 편이다. 하나는 아이가 위험한 상황이 될 때고, 또 하나는 아이가 타인에게 피해를 줄 때다. 아이 마음을 읽어준다고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도 이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는 건 아이를 금쪽이로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고,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는다.
마애불에서 내려와 경내를 구경한다. 대웅전도 가고, 와불도 보고, 석전도 보고 금으로 씐 물고기랑 용도 보고 둘러둘러 내려온다. 불전함이 있는 매점 한쪽에 BTS가 써두고 간 기와를 발견했다. 3월에 있을 광화문 콘서트 성공을 기원하고 갔던가보다. 역시 기도빨(?)이 좋은 곳인가. 괜스레 다른 날보다 108배가 더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미세먼지는 좋지 않았지만 날이 따뜻해서 외투를 벗고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땀이 식으면서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처럼 힘들지 않았다. 마애불까지 올라가 108배를 하고 오느라 다리가 후들거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힘이 붙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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