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
소문으로만 듣던 힙하디 힙하다던
불교박람회에 다녀왔다.
"4월 첫째 주 주말은 비워둬! 불박 가야 해."
식구들에게 통보했다. 우리는 힙하다는 불박에 갈 거라고 했다. 아이와 남편이 불박이 뭐냐고 묻는다. 기세등등하게 "불. 교. 박. 람. 회. 몰라?"라고 했더니 남편이 슬그머니 검색해 본다. 한참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남편이 정말 힙한가 보다며 은근 기대를 한다.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를 하는지 어떻게 알고 SNS 피드에 불교박람회 콘텐츠가 떴다. 아 이런. 한 달 전에만 알았으면 무료 신청을 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입장료가 50% 할인되는 사전예약 기간이라 냉큼 입장료 3장을 결제했다.
요즘 MZ들은 불교에 열광한다고, 그래서 불교박람회가 성황이라고 언젠가 기사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뭐 이런 게 다 유행이냐고 웃고 넘겼는데, 내가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다니. 갑자기 나도 힙한 MZ가 된 기분이다.
일단 냅다 먼저 결제를 해놓고, 도대체 불교 박람회에 가면 뭘 할 수 있는지 서치를 시작한다. 불교박람회에서는 불교용품을 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나 보다. 좌복이 필요했는데 50% 할인가에 모셔주면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고 하고는 질러야지 결심한다.
불교박람회가 너무 잘 됐던가보다. 폭발적인 인기에 토요일에 인파가 최대로 몰리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지 사전예약자 중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환불해 주고 현장등록은 제한된다는 문자가 왔다.
굉장한 인기다. 온라인 서비스로 치면 서버가 터진 상황. 준비한 쪽에서는 컴플레인도 많고 안전사고도 고민이고 수요 예측을 잘 못해서 난감하겠지만, 예상보다 많이 와서 말 그대로 대박이 터진 셈이라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토요일 오전에 가려고 했는데 장염으로 고생하는 바람에 병원에서 수액을 맞느라 일요일로 일정을 바꿨는데 문자를 받고 다행이다 싶었다. 이 또한 108배를 열심히 한 덕에 얻은 행운이려나.
"얼른 준비해, 오픈런해야지!"
문자를 받고 일찌감치 집에서 나선다. 봉은사역에 도착한 시각이 9시쯤이었는데 일요일 오전 같지 않게 사람들이 엄청 많이 내린다. 다들 한 방향으로 가는 걸 보고 혹시 불교박람회인가 했는데 역시나였다. 매표소 앞은 이미 구불구불 몇 번이나 꺾인 줄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오픈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왔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우리도 매표 대열에 합류했다. 다들 아침 일찍 와서 기다렸는지 더러는 바닥에 주저앉아 휴대폰을 보거나,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고 간식을 먹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30분쯤 지나니 매표가 시작되었다. 전달받은 QR로 표를 출력하고 다시 그 표를 입장 팔찌와 코인으로 바꾸었다. 손목에 팔찌를 하고 나서야 행사장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랜만에 수많은 인파에 속하느라 불교박람회 탐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쳤다. 대문자 I인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기가 빨리는 느낌. 아이와 남편은 재미있는지 두리번대며 여기저기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여기저기서 환대를 받았다.
행사장 안에서는 차 냄새, 향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절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 무엇을 봐야 할지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간 게 아니라 그냥 쓱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젊은 친구들은 B급 감성이 가득한 굿즈에 관심을 보였다. SNS에서 유명세를 탄 몇몇 매장 앞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줄이 길게 늘어섰다.
노쇠한 나는 딱히 키링이나 스티커, 키캡이나 티셔츠 같은 것에 관심이 없어서 그저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좌복을 사고 싶었지만 좌복은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좋은 건 늘 그렇다. 한 바퀴 죽 둘러보고는 행사장 끝에 있는 음식코너에 가서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을 채식 김밥 3줄과 호빵만두세트를 하나 샀다.
들어오는 인파를 헤치고 행사장 밖으로 나가 조용한 벤치를 찾았다. 고기나 햄 없이 조린 두부와 표고, 당근과 상추로 싼 김밥을 먹고, 따끈한 채식 만두와 호빵으로 요기했다. 넷플릭스 프로그램에 나와 잔뜩 기대한 채식 김밥은 생각보다 놀랄만한 맛은 아니었다. 졸인 두부와 표고의 식감은 쫄깃했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드는 맛이었다.
밥을 먹고 들어와 매표소에서 받은 코인으로 뽑기를 하기 위해 줄을 섰다. 차례가 되어 입장할 때 받았던 코인을 뽑기 기계에 넣고 돌렸다. 하얀 공이 나왔다. 남편과 내 몫의 뽑기에서 나온 게 당첨이라 미션을 하고 '가피백'이라는 백을 받았다. 미션은 스님을 만나 '공(空)'이 뭔지 물어보는 것.
"스님, '공'이 무엇인가요?"
행사장 입구에 비구니 스님 두 분이 계시길래 가까이 갔더니 우리보다 먼저 온 젊은 처자가 공이 뭔지 물어보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렸다 얘기가 끝나자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한 뒤 공이 뭔지 물어봤다. 질문은 아이가 했다.
한 스님이 나머지 한 스님이 명상을 전문으로 하는 스님이라고 유뷰브를 찾아보라 신다. 그럼 공이 뭔지 알 수 있다고. 찾아보니 키가 크고 안경을 쓴 젊은 스님이 영상 썸네일에 나와있다. 공이 뭔지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렸다. 어린아이에게 설명하기 난감하신지 계속 적당한 단어를 찾아 설명하려 노력하셨다.
명상을 하면 공이 뭔지 알 수 있다길래 아이가 주말마다 전국 천년고찰을 다니며 108배를 하고 있고 올해 40군데 정도 다녀왔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이 아이 얼굴을 보더니 수행하면 잘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중에 꼭 수행 한 번 시켜보라고 여러 번 얘기하셨다. 아이는 그게 뭔지 이해할 것 같다고.
스님들께 좋은 말씀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와 공이 뭔지 적은 후 상품과 바꿨다. 내가 쓴 '공'의 정의는 기억나지 않는다. '텅 비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태'라고 했던가.
상품은 가피백이었다. '가피'를 책에서 봤는데 그 뜻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찾아봤다. 불교에서 '부처님·보살의 자비로운 힘이 중생에게 더해져 힘을 주거나 구제·보호를 베푸는 것'을 뜻한단다. 가방은 크고 무거웠는데 안에 이것저것 많이 들어 있었다. 컵누들, 두부면, 음료, 자양강장제, 디퓨저 등 사전등록 금액을 상회하고도 남는 물건들이었다. 입장할 땐 스타벅스 초코라테랑 과자도 받았었는데. 행사장 밖에서 SNS 팔로우를 하고 스님이 손목에 채워주시는 팔찌도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낸 것보다 얻어가는 게 더 많은 박람회다.
덕분에 짧게 박람회를 둘러봤는데 '무소유'말고 '풀소유'의 상태로 집에 오게 됐다.
소문은 들었지만 박람회가 생각했던 것보다 알차서 놀랐다. 임종체험도 할 수 있고, 선명상 체조 체험도 할 수 있고, 명상 체험도 할 수 있고, 스님이 관상도 봐주시고, 스님과 상담도 할 수 있고, 스님이 만든 차나 음식도 살 수 있고 하루 종일 있어도 될 만큼 볼 것, 할 것이 많아 다채로웠다.
그보다 더 놀란 건 박람회에 온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는 거다. 청년들은 윤회니 번뇌니 해탈이니 하는 용어들이 재기 발랄함을 뽐내는 아이디어 상품들에 열광했다.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기다려 기꺼이 지갑을 열며 즐거워했다. 여태 내가 기억하는, 내가 알고 있는 엄숙하고 신성한 불교의 모습이 아니었다.
집에 오는 길 팔로우한 불교박람회 SNS에서 불교나이트를 봤다. 천년고찰 봉은사가 순식간에 힙한 클럽이 되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둠칫두둠칫 거리게 될 만큼 흥겨워보였다. 좀 더 젊어서, 좀 더 시간이 많아서, 좀 더 여유로워서 박람회 말고 다른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어쩌다 알고리즘에 이끌려 세상 힙한 불교박람회를 다 구경하게 되다니. 천년고찰 108배 프로젝트가 불러온 나비효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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