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는 자신'이 뭔가를 '하는 놈'보다 옳았다는 위안
노인, MZ, 나이가 달라서 혐오. 캠핑, 자전거, 러닝 유난 떤다고 혐오.
혐오는 게으른 놈이 하기 딱 좋은 짓이다.
대 혐오 시대가 열렸다. 다음 혐오의 과녁은 어디일까. 사람들은 개척시대의 건 슬링어마냥 후두다닥 검지를 꺼내, 새 과녁에 삿대질하고 드르닥닥 키보드를 두드릴 준비가 되어있다. 혐오하지 마세요. 당신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라는 착하고 약해빠진 구호는 집어치우자. 이해해보자. 혐오를 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혐오는 아무리 봐도 남는 장사다.
시장 상황을 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읍시다. 건강도 해야하구요. 커리어도 쌓고...어쩌고 저쩌고 세상엔 자기계발과 성장의 교리가 널리 퍼져있다. 그것이 사이비 말씀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딴데서 하고, 여기서 가져갈 포인트는 사람들은 이 교리를 체화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모두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하는 압박을 느낀다.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소용없다. 신심이 충만한 신도가 나르는 말씀들은 유튜브의 쇼츠에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우리의 사고를 급습한다. 자, 게으른 자여, 어찌하겠는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남보다 나은 구석을 찾아야했다. 이제 방구석을 나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그럴 놈들은 진짜 게으른 자가 아니니 논의에서 제외한다. 커뮤니티를 열고, 뉴스 기사의 댓글을 읽고 (정작 기사 본문은 안 읽는 특징이 있다.) 나보다 못난 이를 찾아나서는 찐 게으른 자들이 이 글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나보다 못난 놈이라는 걸 어찌 확신하는가. 즉, 스스로를 속이고 위안을 얻는 자위행위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최소한 두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를 정언명령으로 세워야한다. 내가 욕할 사람, 그 사람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는 알 바 아니며 궁금해하지도 않아야 한다. 그저 그 잘못된 행위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판단해야한다. 여기서 레벨이 쌓이면, 그룹 전체를 싸잡아 사고하는 고도의 일반화 사고 또한 가능해진다. 둘째, 자신이 존중하거나 열정적이고 소중히 여기는 분야가 없어야 한다. 스스로의 중요한 가치가 없어 역지사지가 불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방구석에서 인터넷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게으른 자라면 쉽게 체득할 수 있는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저 놈, 저거 러닝하면서 도로를 점유하네? → 인성적으로다가 결함이 있는 못난 새끼 → 러닝하는 새끼는 다 저 모양임
러닝하네? → 인성적으로다가 결함이 있는 못난 새끼
▶ 근데 왜 욕하냐고? 난 러닝을 안 하니까!
중간에 좀 헛소리로 분량을 채웠는데, 사실은 이 마지막 부분, '왜 욕하냐고? 난 러닝을 안 하니까!'가 이 이야기의 정수다. 혐오가 게으른 자에게 남는 장사인 이유는 그저 '하지 않음으로써'(!) 우위에 선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이 자위행위는 자기계발 교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지 않는 자신'이 뭔가를 '하는 놈'보다 옳았다는 위안을 선사한다. 내 게으름도 긍정하고 남도 욕하며 스스로를 그래도 쪼~금 괜찮은 놈으로 올려두는 상태.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딨겠나.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