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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기적 Oct 23. 2022

비 올 때만 나타나는 엉뚱한 폭포
, 제주 엉또폭포

< 엄마 백번만 만나줘 >

엄마 내가 엄청 시원한 곳을 알아냈어. 


물론 바다는 아니야. 

고양이처럼 물을 싫어하는 엄마에게 설마 내가 바다에 가자고 하겠어? 

그런데 물이 있는 곳은 맞아.


그곳은 말이야. 바로 폭포야. 


제주에서 아이들과 처음 폭포에 갔던 날 바로 느낌이 왔어. 울 엄마 아빠 여기 참 좋아하겠다 하고. 

저번에 한 번 부녀회에서 가본 적 있다고? 에이, 나랑은 안 가봤잖아.

또 많이 걸어야 하냐고? 일단 들어봐. 아이들과 사전 답사 다녀온 이야기를.


지난주에 제주에 비가 엄청나게 내렸어. 

장마도 아닌데 장마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더라고. 이렇게 비 온 다음 날 가기 좋은 곳이 바로 폭포야.  


폭포는 말이야, 가기 전부터 시원해져.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우렁찬 물줄기 소리를 듣기만 해도 명치가 시원해지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폭포에 가면 웃음이나.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날아온 물방울이 나를 적시거든. 몸은 젖고 있는데 희한하게 웃음이 나와. 그게 바로 폭포의 매력이더라고.  


발병 이후 엄마에게 여름은 힘든 계절이 되었잖아. 몸은 더워지고 자꾸 땀이 흘러서 화장품도 선크림도 다 지워져 버리니까. 엄마 피부를 닮은 나도 세수하고 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곧 얼굴이 따가워지는데 엄마는 얼마나 따가울까. 여름이 오면 많이 걱정돼. 그래서 처음 폭포에 놀러 갔던 날 절로 엄마 생각이 났나 봐. 


이번에 제주에 오면 우리 꼭 폭포에 가보자. 특히, 정방 폭포를 먼저 가자. 그 앞에 서면 세수 생각일랑 잊을 만큼 절로 시원해지거든. 


제주에 폭포가 많냐고? 응 많아.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자동 세수가 되는 정방 폭포, 산책길이 아름다운 천지연 폭포, 그리고 엉또 폭포. 이렇게 엄마랑 같이 갈 곳이 세 곳이나 된다고.


천지연 폭포랑 정방폭포는 들어 봤는데 엉또 폭포는 처음 들어본다고?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 엄마, 보나 알지? 우리가 서귀포 갈 때마다 맛있는 식당을 잘도 소개해준다고 엄마가 고마워하는 보나 말이야. 얼마 전 그 친구랑 아이들 데리고 정방 폭포에서 만났어. 정방 폭포 앞에서 아이들이랑 물장구치며 놀 때 보나가 그러는 거야. 


"언니, 엉또 폭포가 

가장 웅장하고 멋지데. 

나도 아직 못 가봤는데, 

마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서귀포에 사는 보나의 말을 듣고 어서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제주는 비가 내리면 지반으로 물이 흘러들어 가잖아. 그래서 평소에는 계곡 물도 별로 없고, 폭포의 물줄기도 약하겠지만 비 온 뒤에는 매우 웅장해져 있을 테니까.


그래서 많은 비가 내렸던 다음 날, 부랴부랴 아이들을 차에 태웠어. 집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시간 거리의 엉또 폭포를 향해 내달렸지. 


그랬는데 엄마, 

글쎄 우리가 허탕을 쳤네! 


폭포에 물이 없더라. 정말로 폭포에 물이 단 한 방울도 없었어. 집을 나서기 전, 내가 사는 제주시는 물론 서귀포시의 강수량까지 체크하고 떠났는데 말이야. 그제야 생각이 났어. 제주시에 사는 친구가 엉또폭포 앞에서 우비 입고 찍은 사진이. 맞아. 그 친구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엉또폭포를 보러 갔었던 거야. 그 비를 뚫고 말이야. 


내가 이번에 확실히 배웠네. 

엉또 폭포는 비 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폭포라는 걸.


집에서 한 시간이나 갔는데 폭포도 못 보고 와서 어쩌냐고? 에고 울 엄마 또 애달프네. 괜찮아. 비록 물이 와장창 떨어지는 폭포는 못 봤지만, 엄마 아빠랑 비 오는 날 갈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었잖아. 게다가 엉또폭포를 향해서 걷던 길이 꽤 멋있었어. 왜 그런 느낌 있잖아. 같은 자연이라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있는 곳. 


폭포를 향해 걷던 길에 우뚝 솟아있던 바위산이 특히 그랬어. 사람은 닿을 수없는 가파른 산 위에 우렁차게 자라 굵은 나무들이 힘 있게 하늘 위로 뻗어 있더라고. 산꼭대기에 우리가 모르는 생명체가 산다고 해도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풍경이었어. 그 바위산을 보고 솔방울이 말하더라.


“엄마! 여기 

영화 <<아바타>>에 나온 곳 같아!”


피식 웃음이 났어. 그거 열두 살 이상 관람가인데 언제 봤어? 되물으려 했는데, 멋진 산새에 반해 자기도 모르게 비밀을 누설한 솔방울은 그제야 자기 입을 손으로 가리더라고. 어쩌겠어 이미 본 영화를 못 보게 할 수도 없고 나도 그냥 웃어버렸지 뭐. 


학교 친구들이 진짜 재밌는 영화라고 했다고, 올해 연말에 <<아바타 2편>>이 나오면 그때는 극장 가서 보여주면 안 되냐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렇게 해달라고 애타게 조르곤 했거든. 그럴 때마다 아직은 안된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진지하게 고민했어. 1편도 안 봤는데 1편부터 보여줘야 하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 녀석이 이미 봤을 줄이야. 아마 배 서방이겠지? 나의 고민을 종료시켜준 사람이.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마. 그 일로 배 서방에게 뾰족하게 굴진 않았으니까. 


엄마, 어쩌면 그 일 뿐만은 아닐 거야. 

가만히 보면 주변에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 참 많은 것 같아. 


솔방울이 진즉에 본 영화 <<아바타 1편>>도 그렇고, 폭포라고 불리지만 비올 때만 폭포로 존재하는 엉또폭포도 그렇고. 언제든 엄마 아빠 곁에 살며 자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게 된 일도 그렇고 말이야. 


그중 오랜 시간 내가 당연하게 여긴 일은 엄마 아빠가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내 곁에 있을 거로 생각한 일이었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해지지 않았을 때, 당황스럽고 화도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더라고. 결국에는 받아들여지더라고. 


그러자 시간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 


우리가 지금 보내는 시간도 언젠가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 테니까. 우리가 만나고, 쓰다듬고, 눈 맞추며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가끔은 벅차기도 해. 전화해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일 년에 한 번이지만 이렇게 함께 제주를 걸을 수 있는 것도.


엄마 아빠와 갈 곳을 먼저 다니는 동안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어쩌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후회되는 과거나 반갑지 않은 미래가 아닌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갖고 싶고 그 속에 머물고 싶은 거라고. 


그러니까 이 더위가 가고 제주에서 만나면 이 시간을 아낌없이 보내자. 변한 몸과 약해지는 마음을 견디면서 우리가 보내는 시간 속으로 가고 또 가보자.


자! 그러니 약속해! 내가 비 오는 날 우비 입고 30분만 걷자고 하면 꼭 걷기로. 딱 30분이야. 30분만 데크 길을 걷고 약 스무 개 정도의 계단을 오르면 우리는 분명 볼 수 있을 거야. 웅장하게 떨어지는 엉또폭포의 물줄기를. 비 오는 날에만 만날 수 있는 그 순간을. 그 순간의 우리를. 

+엉또폭포는 비가 오는 당일, 

강수량이 50mm 이상일 때에 가야 

저희처럼 허탕을 치지 않는답니다.

우산보다는 우비가 좋아요. 

바람 부는 제주는 비가 옆으로 내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데크길이 있어서 걷기 불편하지 않아요.

다만 비 오는 날 엉또 폭포를 보기 위해 관광객은 물론 제주도민도 많이 오므로 사람이 많을 수 있어요. 

그래도 폭포를 보는 시간은 길지 않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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