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때였나 7살 때였나,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어린 시절에 약 2년 정도를 캐나다에서 지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종종 영어를 잘하겠다며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고작 2년도 안 되는 그 기간 동안 영어를 배워봤자 얼마나 배우겠나. 어릴 때부터 영어를 싫어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캐나다에 있었을 땐 좋아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싫어하게 됐다.
워낙 어린 시절에 캐나다로 가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한국어도 서툴렀고, 영어도 그리 잘하지는 못했다. 말 그대로 0개 국어, 그 자체였다. 다행인 건 어릴 적에 영어를 배웠던 덕에 발음 하나는 좋았는데 그게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당시 정규 교과목으로 영어를 배워야만 했는데 캐나다에서 막 귀국한 나는 선생님에게 좋은 발표감이었다. 별생각 없이 교과서를 읽고 자리에 앉으면 주변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난 척하는 거 봐. 재수 없어."
단언컨대 나는 잘난 척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영어로 읽어보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교과서를 읽었을 뿐이었다. 그 시절의 좋지 않은 기억과 경험으로 영어 자체가 끔찍해졌다. 최대한 발음을 어눌하게 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콩글리시를 일부러 익힌 것이다. 영어를 잘하고 싶지 않았다. 영어를 하는 내가 싫었다. 캐나다에서 온 아이라는 타이틀이 싫었다. 자꾸 나에게 영어 교과서를 읽도록 발표를 시키는 선생님께 찾아가 울었다. 선생님께 제발 수업시간에 발표를 시키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등교거부까지 했다. 그렇게 영어에 대한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나에게 영어는 정말 끔찍함 그 자체였다.
의도적으로 영어를 기피하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여전히 영어가 너무 싫었다. 그 쯤 되면 다 잊고 지낼 수도 있을 법도 하지만 나는 그런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점점 영어라는 교과목과 거리가 멀어졌고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볼 때쯤엔 당연히 주변 친구들에 비해 영어 성적이 한참 뒤떨어져있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천사라는 뜻의 Angel이라는 단어조차 스펠링을 몰라서 쓰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를 영어를 못하는 아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요구하는 영어 성적을 만들어야 했고, 더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도 영어는 필수였다. 그제야 아차 하며 영어를 공부해 보겠다고 시작했지만 내 영어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후회해 봤자 늦었고 나는 천천히 다시 영어와의 관계를 회복해 보고자 노력했다.22살, 시험 삼아 본 오픽은 NH 등급이 받았고, 역시 시험 삼아 본 토익은 정확한 점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250점 정도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망했다. 바로 학원을 등록했다. 1년 내내 학원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매일같이 나갔다. 오픽은 IM 등급, 토익은 650점이 내가 받은 최고의 점수였다.
[영어 잘하는 방법]
[영어 회화 잘하는 방법]
[영어 공부 방법]
외항사를 가고 싶었다는 꿈을 꾸게 되면서 영어를 잘하고 싶어졌다. 유튜브와 네이버에 가리지 않고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검색을 했다. 유명한 인터넷 강의도 다 들었다. 당시 천일문이 유행했는데 천일문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나에겐 왜인지 효과가 없었다. 외항사 스터디에 가면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팀원들이 너무 부러웠다. "리온 씨는 그냥 답변을 달달 외워서 이야기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요."라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다. 사실 그 피드백이 현실적이긴 했다.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조차 영어로 내뱉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대사를 외우듯이 답변을 달달 외워서 면접장에 가는 것이 그나마 승산이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영어가 장애물이 되어 외항사의 꿈을 버리고 국내의 한 항공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영어로 면접을 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미국에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확실히 영어를 접하는 시간이 많으니 습득하는 속도가 빨리 늘긴 하지만 여전히 버겁다. 앞으로 평생에 걸쳐 영어와 친해져야만 하겠지만 그럼에도 차근차근 친해져보고 싶다. 내가 외면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보듬어주며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치유해보고자 한다.